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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식'''(盧植, ? ~ [[192년]])은 탁군(涿郡) 출신이며 [[후한]] 말기의 장수이다. 황건적 진압에 공을 세웠다. [[유비]](劉備)와 [[공손찬]](孔孫瓚)의 스승이기도 하다. 자는 자간(子幹)이다.
 
== 생애 ==
 
노식은 젊었을 때 [[정현 (후한)|정현]](鄭玄)과 함께 [[마융]](馬融)에게서 몇 년 동안 학문을 배웠다. 마융이 주변에 여자들로 하여금 춤추고 노래부르게 해도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아 스승의 존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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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조정에서 보낸 [[환관]]인 소황문(小黄門) 좌풍(左豊)이 노식의 군영을 감찰 나왔다. 노식이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뇌물을 바치지 않자, 조정으로 돌아간 좌풍은 노식이 황건적을 격파할 수 있는데도 얼른 진압하지 않는다고 모함했다. 결국 영제의 진노를 산 노식은 순식간에 죄인이 되었으며, 위기에 몰렸던 장각은 숨통을 트게 되었다. 노식의 후임으로 부임한 [[동탁]]은 사람 됨됨이가 안하무인이였으므로 주변 사람들은 노식이 부임해 있었을 때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해 10월 황건적의 본진을 격파한 [[황보숭]](皇甫嵩)이 노식에게 공을 돌리는 상소를 올린 덕분에 상서(尙書)가 될 수 있었다.
 
[[189년]] 대장군 [[하진]](何進)이 [[동탁]](董卓)을 끌어들여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자, 노식은 정태(鄭泰)와 더불어 이를 반대했으나 하진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결국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하자 그 부하들은 일제히 궁궐을 공격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장양 (십상시)|장양]](張讓)이 하태후에게 하진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고하고 태후와 황제, 진류왕을 데리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노식이 창을 쥔 채 태후를 이끌고 달아나던 [[단규]](段珪)를 거듭 노려보자, 단규는 마지못해 태후를 놔두고 도망쳤다.
순조롭게 정권을 잡은 동탁은, [[후한 소제 (13대)|소제]](少帝)를 폐하고 진류왕(陳留王: [[후한 헌제|헌제]]獻帝)을 세울 뜻을 내비쳤다. 노식이 면전에서 반대하자 동탁은 노식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당시 갓 등용되어 동탁의 신임을 받고 있던 [[채옹]](蔡邕)이 노식을 위해 간한 덕분에 벼슬에서 쫓겨나는 것으로 그쳤다. 이후 하북으로 달아났다가 [[원소 (삼국지)|원소]](袁紹)에게 등용되었다. [[192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저작으로 《상서장구(尚書章句)》《삼례해고(三禮解詁)》가 있으며, 채옹, [[양표]](楊彪), 한설(韓說)과 함께 《한기(漢記)》를 공동으로 집필했다.
 
== 노식의 친족관계 ==
[[파일:노식.png]]  
 
[[분류:한나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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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삼국지의 인물]]
 
[[en:Lu Zhi (ministerHan Dynasty)]]
[[ja:盧植]]
[[no:Lu Zhi (embeds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