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오 다메카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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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년 9월, [[엣츄]]에서 아버지가 전사(다메카게는, [[우에스기 후사요시]]가 원군을 보내지 않아서 요시카게를 죽게 만들었던 것을 증오하고 있었다고도 전한다)했기 때문에 [[나가오씨]]의 가독을 이어서 에치고 [[슈고다이]]가 되었다. 다음해, 1507년 8월, "다메카게에게 모반의 기운이 있다"라고 하면서 [[슈고]]인 후사카게가 다메카게 토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기선을 제압하여 후사요시의 거관(居館)을 습격한다. 도망 중에 후사요시가 자결하자, 그 양자인 [[우에스기 사다자네]]를 괴뢰로서 슈고에 옹립했다.
 
그러나 1509년, 자결했던 후사요시의 형인 간토 [[간토 간레이]](關東管領) [[우에스기 아키사다]]가 다메카게에 대하여 보복의 대군을 일으키자, 다메카게는 열세로 몰려서 [[사도(佐渡)]]로 도망갔다. [[권토중래]]를 꾀하여 다음해인 1510년에는 반격으로 전환하여, 나가모리하라(長森原)의 전투에서 퇴각하는 우에스기 군에게 맹공을 가해, 원군인 [[다카나시 마사모리]](다메카게의 외조부)의 도움도 있어서 아키사다를 죽였다. 이에 따라, 빼앗겼던 에치고의 실권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하극상의 대표격의 한 명이지만, 조정이나 [[무로마치 막부]]의 권위를 존중하여, 자주 즉위 비용 등에 대해 헌금을 했다. 이에 따라 수작을 하여 시나노카미가 되었던 것 외, [[막부]]로부터 슈고의 격식등을 허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