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권투 선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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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력 ==
김기수는 [[1951년]] [[1.4 후퇴]] 당시 남쪽으로 내려왔다. [[전라남도]][[여수]]에 정착한 그는 [[1954년]] 여수 여항중학교 김기봉 교사의 호의로 학교에 들어가 육상부 단거리에서 활약하다 복싱으로 전향했다. 이후 서울 [[성북고등학교]] 복싱부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58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웰터급 금메달을 땄다. 1957년 아마추어 복싱 데뷔 후 1961년 8월 프로 전향 전까지 아마추어 전적은 88전 87승1패였다.
1965년 동양태평양 미들급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1966년 니노 벤베누티를 꺾고 세계챔피언이 됐다가 1968년 3차방어전에서 산드로 마징가(이탈리아)에 패했다. 1969년 은퇴 후에는 사업가로
[[명동]]에서 찻집 ''챔피언''을 운영했고, ''챔피언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1996년 9월 간암 말기 선고를 받은 후에는 기독교에 입문,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유족은 부인과 2남2녀.
== 에피소드 ==
* 김기수는 중학교 3학년 때 전라남도를 주름잡는 씨름 선수로 활약하던 도중 [[김일 (프로레슬링 선수)|김일]]과 씨름판에서 마주친 일이 있다. 두 사람간의 씨름 대결은 김일의 승리로 끝났다.
* 김기수는 1966년 세계챔피언이 되기 전에 니노 벤베누티와 맞붙은 적이 있었다. 김기수는 [[1960년 하계 올림픽]] 웰터급 준준결승에서 벤베누티에게 패했다. 벤베누티는 이 대회에서 웰터급 금메달을 따내고 복싱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며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ref>[사각 링에 펼쳐진 인생들]</ref>
* 세계타이틀을 딸 때 장충체육관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65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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