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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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안드레스 메시'''(Lionel Andrés Messi, [[1987년]] [[6월 24일]] - )는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 (아르헨티나)|로사리오]] 출생의 [[축구]] 선수로 [[프리메라리가]]의 축구 클럽인 [[FC 바르셀로나]]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일원이다. 그는 22세의 나이에 최연소이자 최다득표로 [[발롱도르]](Ballon d'Or)와 [[FIFA 올해의 선수|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수차례 발롱도르와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후보에 오르며 현 세대 최고의 축구 선수중 한명으로 꼽히고 있다. 2005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FIFPro]]와 [[월드 사커 매거진]] 최우수 유망주로도 뽑힌 바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과 능력은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에 비견되곤 한다. 실제로, 마라도나는 메시를 그의 후계자라고 선언한 바 있다.
 
메시는 어린 나이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며 FC 바르셀로나가 그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발견했다. 바르셀로나가 그의 성장 호르몬 장애를 치료해줄 것을 약속함으로써 그는 [[뉴웰스 올드 보이스]] 유스팀을 떠나 2000년 그의 가족과 함께 유럽으로 이주했다. 2004–05 시즌 데뷔로, 그는 라 리가 최연소 선수 기록을 세웠으며 또한 최연소 리그 골도 기록했다. 메시가 데뷔한 해에 FC 바르셀로나는 리그에서 우승했고, 다음 해인 2006년에는 리그와 UEFA 챔피언스리그 더블을 달성했다. 메시는 2006–07 시즌부터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정규 주전멤버가 되었고,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리그 26경기에서 14득점을 기록했다. 아마도 그의 가장 성공적인 시즌은 [[프리메라리가 2008-09|2008–09 시즌]]일 것이다. 이 시즌 동안 메시는 38골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트레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 결과로서 2009년 발롱도르, 2009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 2009년 FIFA 올해의 선수상, 베스트 11에 모두 선정되는 등 축구와 관련된 대부분의 상을 거머쥐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메시는 [[2005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전의 두 골을 포함 총 여섯 골을 기록하여 득점왕에 올랐다. 그 직후 그는 아르헨티나 성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이 되었다. 2006년 메시는 [[FIFA 월드컵|월드컵]]에서 뛴 최연소 아르헨티나인이 되었고,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와의 경기에서 후반 30분에 교체 투입되어 후반 43분 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아르헨티나]]의 6-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다음 해에는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이징 올림픽|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그의 성인 국가대표 경력 중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 때 스페인에서 국가 대표팀의 보강을 위해 메시를 귀화시키려고 시도한 바 있으나 메시는 자신의 병마를 해결해 준 스페인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버릴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또한 메시는 2009년 발롱도르, 2009년 유럽 올해의 선수상, 2009년 FIFA 올해의 선수상, 베스트 11에 모두 선정되는 등 축구와 관련된 모든 상을 휩쓸었으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리오넬 메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극한 애국심을 가진 선수로도 유명하며 스페인에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메시를 꼬득여 스페인으로 귀화시키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메시는 끝내 아르헨티나 국적을 버리지 않았다. 메시는 자신의 병마를 스페인에서 해결해줘서 고맙지만 그래도 조국인 아르헨티나를 버릴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 어린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