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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5월 23일에 독일 영토 가운데 프랑스, 영국, 미국이 통제하는 서방측 지구가 통합하여 [[서독|독일 연방 공화국]]이 들어섰으며, 같은 해 10월 7일에 소련측 지구는 [[독일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주로 두 나라를 각각 '서독'과 '동독'으로 칭하였으며, 베를린 역시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으로 갈라졌다. 동독은 동베를린을 수도로 삼았으며, 서독의 경우는 [[본]]이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서독은 두 나라로 갈라진 당시 상태가 언젠가는 종식되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으므로 수도 본의 지위를 임시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
 
서독은 "[[사회 시장 경제]]" 체제와 더불어 연방제 의회 공화국 체제를 수립하였으며, 미국,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1950년대 초부터 서독은 장기 경제 성장을발전을 이루었다. 1955년에 서독은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였으며, 1957년에는 [[유럽 경제 공동체]]에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동독은 [[동구권]]에 속한 나라로 [[바르샤바 조약]]과 붉은 군대 점령군을 통하여 [[소련]]의 정치/군사적 통제를 받았다. 동독은 인민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긴 하였으나 권력은 공산주의 세력인 [[독일 통일사회당]](SED)의 [[정치국|정치국원]]들이 독점하였다.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거대한 비밀 정보 기관인 [[슈타지]]와 그 밖의 여러 통일사회당 하부 조직을 통해 사회 전반을 통제하였다. 그 대신 국가는 싼 값에 대중의 기초 생활 필수 재화를 제공하였다. 동독은 소련식 [[통제 경제]] 체제를 세웠으나 나중에는 [[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에 가입하였다. 동독에서는 주로 동독의 사회 보장 제도의 이익과 더불어 서독이 언제든 침공할지 모른다는 내용을 선전하였으나, 동독 시민 다수는 서방의 정치 자유와 경제 번영을 부러워하였다. 동독인이 서독으로 월경하지 못하게끔 막고자 1961년에 건설한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