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회준비위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00범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Sienic (토론 | 기여)
정보 바로잡기, 건국 준비위원회는 초창기에 중도 정치성향 계열이라고 보는게 옳습니다. 9월 무렵이 되면서 건준내부에 좌경화 되어간것이죠.
1번째 줄:
'''국민대회준비위원회'''는 [[1945년]] [[9월 7일]], 송진우가[[고하|송진우]]가 건국준비위원회에[[건국준비위원회]]에 대항하여 '임시정부 봉대를봉대'(임정봉대론)를 주장하며 설치한 기관이다. 한민당약칭으로 '''국준'''이라 불리며, 국민대회준비위원회는 뒷날 [[한국민주당]] 창당 이후 사실상 해체되었으나, 송진우 암살 이후 소멸되었다.
 
== 개요 ==
[[1945년]] 8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아베신조는 [[엔도 류사쿠를류사쿠]]를 통해 송진우와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어서 [[김준연]], [[인촌|김성수]] 등과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하였다. 치안권을 최종 인수한 것은 여운형으로[[여운형]]으로, 여운형은[[여운형]]은 [[안재홍]], [[조만식]] 등과 건국준비위원회를[[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ref>여운형은 총독부에게 5가지 제안을 하여 조건부 제시를 하였었다.</ref> 이어서 여운형은 좌-우를 떠나 합작을 원칙으로 송진우에게도 건준에 참여를 권고하였으나, 송진우는 '경거망동 하지말라.'며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를 거부하였다.
 
송진우는 아베와 여운형의 청을 일축한 후 3.1운동 직후부터 상해, 중경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혈투해독립운동을 해온 대한민국임시정부를[[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면서, 좌익진영에건국준비위원회에 반대하여 국내 민족주의자와 지주 계급, 우파 지식인층들을 소집하여 국민대회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국민준비대회준비위원회의 회원들은 [[9월 6일과6일]]과 [[9월 7일]] 각각 [[고려민주당]], [[조선민족당]], 한국국민당을[[한국국민당]]을 창당했는데 [[9월 16일]] 이들을 통합하여, 천도교 강당에서 한국민주당을[[한국민주당]]을 창당, 결성하였다.
 
이와 동시에 9월, 건국준비위원회가[[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으로[[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개편되자, 이들은 '임시정부 법통 봉대론을봉대론'을 내세워 건준과 그 후신인 인민공화국에 맞섰다비난했다. [[10월 2일]] 미군정이 주둔하자, 이들은 적극 환영하였다.
 
미군정 주둔 이후 라이벌격인 건준은 해산되었고, 한민당 창당 이후 회원들은 거의 한민당 활동에 치중하고 있었으므로 조직은 사실상 소멸된 상태였다. 45년1945년 12월 30일, 모스크바 3상 회의에 신탁통치안 문제 논의과정에서 송진우가 암살되고 나머지 회원들은 한민당 정치활동을 하거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로 건너가면서 국민대회 준비위원회는 흐지부지 해산되었다.
 
==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