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바타케 지카후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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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에이닌]] 원년([[1293년]]) 음력 1월 29일 아버지 [[기타바타케 모로시게]]와 어머니 [[후지와라 다카시게]]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6개월 만에 종오위의종5위의 관위에 위계된다. 15세 때에는 자신과 같은 역직에 이전부터 임명되지 말아야할 관위가 낮은 자가 임명되자 항의해 [[고니조 천황]]에 사직계를 내는 등 강직한 면을 보였다. [[고후시미 천황|고후시미 상황]]의 [[인세이]]가 시작되자 18세에 참의에참의(参議)에 임명되었고, 다음 해 검비위사를검비위사(検非違使)를 겸했다. [[분포 (연호)|분포]] 2년([[1318년]])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이 즉위하자, 황자 [[요요시 친왕]](世良親王)의 양육을 맡았다. [[요시다 사다후사]]({{lang|ja|吉田定房}}), [[마데노코지 노부후사]]({{lang|ja|万里小路宣房}})와 함께 [[노치노산보]]({{lang|ja|後の三房}})로 불리며 [[고다이고 천황]]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제까지 기타바타케 가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겐지초자|겐씨의 수장]]({{lang|ja|源氏長者}})과 대납언에대납언(大納言)에 임명되었지만, [[겐토쿠 (1329년)|겐토쿠]] 2년([[1330년]]) 요요시 친왕이 급사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38세의 젊은 나이에 출가해 정계를 은퇴하였다. 그의 직위는 당시 종2위 대납언, 겐씨의 수장, 내교방을내교방(内教坊)을 겸하고 있었다. 이 시기 종1위와 준대신에 임명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시기에 관해선 이설도 있다. 따라서, [[가마쿠라 막부]] 전복계획인 [[쇼추의 변]](正中の変)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한편, 그의 아버지 기타바타케 모로시게와 그의 사촌 [[기타바타케 도모유키]]는 [[겐코의 변]](元弘の変)으로 처형되었다.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하고, [[고다이고 천황]]의 [[겐무 신정]]이 시작되자,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는 정계에 복귀한다. [[오슈]]의 진정을 명받은 아들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와 [[고무라카미 천황|노리요시 친왕]]과 함께 [[무쓰노쿠니|무쓰 국]] [[다가 성]]에 입성한다. [[겐무]] 2년([[1335년]]) 호조 가문의 잔당무리가 [[나카센다이 난]]을 일으키자,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천황의 명 없이 그들을 토벌하러 가마쿠라로 나아갔고, 그대로 [[고다이고 천황]]에 반기를 들었다. 그 후, 다카우지는 교토를 장악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서진하자, 다카우지 토벌을 위해 오슈에서 [[교토 시|교토]]로 돌아왔다. 하지만, 교토에서 축출된 다카우지가 [[규슈]]의 병력을 이끌고 다시 교토를 장악하자, [[고다이고 천황]]과 함께 [[요시노 정|요시노]]에 남조를 열어 북조에 대항했다.
 
[[엔겐]] 3년/[[랴쿠오]] 원년([[1338년]]) 아들 [[기타바타케 아키이에]]가 전사한 후, 지카후사는 [[이세노쿠니|이세]]에서 [[이세 신궁]]의 신관 [[와타라이 이에유키]]의 도움을 받아 남조의 세을 확대한다. 이 무렵 지카후사는 이에유키의 [[신국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게 된다. 단, 이에유키가 주창하는 [[이세 신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그 후, [[간토]]에서 남조 세를 확대하기위해 [[유키 무네히로]]와 함께 노리요시 친왕, [[무네요시 친왕]]을 받들어 간토로 건너갔다. 하지만, 해로를 통해 건너갔기 때문에 도중의 폭풍우를 만나 두 친왕과 헤어진 후, 혼자 [[히타치노쿠니|히타치 국]]에 상륙한다. 히타치에 상륙한 후, [[오다 하루히사]]를 의지해 [[진구지 성]]에 머물지만, 북조측에 가담한 사타케 가문의 공격을 받고, 오다 가문의 본거지인 [[오다 성]](현 [[쓰쿠바 시]])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카후사는 무쓰 국 [[시라카와 시|시라카와]]의 [[유키 지카토모]]를 비롯 간토 각지의 반막부세를 규합한다.《[[신황정통기]]》,《[[직원초]]》의 집필을 한 시기가 이 무렵이라고 한다. [[고코쿠]] 원년/랴쿠오 3년([[1340년]]) 북조의 [[고 모로후유]]가 간토 통치를 위해 파견되자, [[기타바타케 지카후사]]는 소원해진 오다 가문을 벗어나 [[세키 무네스케]]의 [[세키 성]]으로 거처를 옮기고, [[다이호 성]]의 시모쓰마 가문과 [[이사 성]]의 이사 가문 등과 연대하여 히타치 서부에서 항전을 계속하였다. 히타치에서의 5년의 시간이 지나자, 남조의 관백 [[고노에 쓰네타다]]가 [[도시초자|후지와라씨의 수장]]({{lang|ja|藤氏長者}})으로 후지와라 씨계 무사단을 독자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자, [[기타바타케 지카후사]]에게는 적과 내부의 내홍으로 자신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고코쿠 4년/[[고에이 (연호)|고에이]] 2년([[1343년]]) 다이호 성과 이사 성이 함락되자 요시노로 귀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