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시들해봇 (토론 | 기여)
잔글 로봇의 도움을 받아 동음이의 처리 : 성종 - 조선 성종 문서로 링크 걸음
Npsp (토론 | 기여)
잔글 →‎설치: 맏았다 → 맡았다
3번째 줄:
== 설치 ==
 
1469년([[조선 성종|성종]]즉위년)에 박중선을 포도주장(捕盜主將)으로 삼아 전라도에 보낸 기록이 있다. <ref> 성종실록 즉위년(1469년) 11월 29일 3번째기사</ref> 이후 각지에 일어나는 도둑들을 잡기 위해 포도장을 임영하여 각지에 보낸 기록이 성종조에만 29번 나타난다. 초기의 포도대장들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되는 임시직 형식이었다. 그리고 성종 5년에는 이양생이 포도장으로 권력을 남용하므로 포도장을 상설화가 폐지되었다가. 같은해 3월 포도장을 다시 신설한다.<ref>성종실록 5년 1월 25일 3번재기사, 5년 3월11일 3번째기사</ref> 이후 1481년(성종12년)에 좌변(左邊)·우변(右邊)으로 나누어, 서울의 동부·남부·중부와 경기좌도는 좌변이 맡고, 서울의 서부·북부와 경기우도는 우변이 맏았다맡았다.<ref>성종실록 12년 3월24일 4번째기사. </ref> 중종 24년인 1529년, 성종실록에 포도청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 관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