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카스 2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크기가 바뀐 것이 없음 ,  11년 전
잔글
때문이였다 → 때문이었다
잔글 (때문이였다 →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르디카스는 한번더 아테네인들을 배반하였고429년 1000명의 군대를 스파르타를 지원하기위해 아르카나니아에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늦게 도왔다. 이에 대해서 시탈케스는 아테네에서의 지원을 약속을 받고 마케도니아로 침입하였다. 이 지원은 결코 실체화되지 않았고 페르디카스는 다시 한번 외교를 사용하여 마케도니아의 생존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시탈케스의 조카에게 그의 누이를 시집보내시로 약속하였는데 그녀는 시탈케스가 떠나도록 설득하였다.
 
이후에 페르디카스는 스파르타와 동맹하였고 기원전 424년에는 스파르타의 브라시다스를 도와 아테네로부터 중요한 식민지 암피폴리스를 취하였는데 함대를 위한 목재를 얻기 용이하기 때문이였다때문이었다. 이것은 아테네에게는 심각한 강타였고 그들을 이후로는 마케도니아 목재만을 사용하게 하였다. 그것은 마케도니아의 협상력을 강화시켰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스파르타인들은 페르디카스를 도와서 그의 국경을 안전하게 하기위해 일리리아인들의 지원의 약속을 받고 린쿠스의 왕 아라바에우스의 강습을 이끌었다. 그러나 일리리아인들은 편을 바꾸어 페르디카를와 그의 스파르타 동맹을 공격하였다. 오합지졸 마케도니아 군대는 달아났고 그리하여 스파르타인들은 후퇴하고 분노하며 마케도니아 군대의 운송 훈련을 공격하였다. 이것은 마케도니아와 펠로폰네소스간의 관계를 그후 시큼하게하였다.
그리고 페르디카스를 아테네에 가깝게 하였다. 결국 423년 그들과 동맹을 맺었다.

편집

47,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