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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야주 ===
신라는 가야를 정복한 뒤인 565년 창녕에 있던 하주정(下州停:속칭 [[완산주]])을 옛 [[다라국]](多羅國)이 있던 대야성(大耶城)<ref>합천, 나중에 강양군</ref>으로 옮겨 대야주(大耶州)라 칭했다. [[642년]] [[선덕여왕]] 11년에 대야성이 백제군에 함몰당하자<ref>이 전투에서 나중에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가 사위인 대야성주 품석과 딸 고타소를 잃고 복수심에 불탔고 이는 그가 삼국통일에 전력을 기울인 원동력이 되었다.</ref> 주치소를 압량(押梁)<ref>경북 경산</ref>으로 옮겨야 했다.
[[661년]] [[태종무열왕]] 8년에 백제가 신라에 패망하면서 치소가 다시 대야로 이전했지만 이듬해에 진주시에 있던 거타성을 중심으로 거타주가 설치되면서 대야주는 분할되었고 [[685년]][[신문왕]] 5년에 청주로 개명한 거타주에 합병되면서 없어졌다.
 
=== 거타주, 그리고 청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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