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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martin.JPG|200 px|섬네일|right|초상화]]
'''호세 프란시스코 데 산 마르틴 마토라스'''({{llang|es|José Francisco de San Martín Matorras}}, [[1778년]] [[2월 25일]] ~ [[1850년]] [[8월 17일]])는 [[아르헨티나]]의 장군이며 [[페루]]의 정치가이다. 흔히 '''호세 데 산 마르틴'''({{llang|es|José de San Martín}})으로 불린다. 당시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남아메리카]] 남부 지역의 독립 운동을 전개하여 성공시켰다.
1813년 산 로렌소 전투 이후 1814년 북부군을 지휘하기도 하면서 그는 [[리마]]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 계획에는 [[쿠요]]에서 처음으로 군대를 조직하여 칠레를 해방시켜 바다로 리마를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1817년 그는 [[멘도사]]에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로 갔다. 그리고 [[차카부코 전투]]와 [[마이푸 전투]](1818년)에서 에스파냐 군대를 물리치고 칠레를 해방시켰다. 산 마르틴은 1822년 7월 22일 이곳 [[부왕령]]의 수도를 부분적으로 장악했으며, ''페루의 보호자''가 된다. 페루의 독립 선언은 공식적으로 1821년 7월 28일에 이루어졌다. 1822년 8월 22일 [[에콰도르]] [[과야킬]]에서 동료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와 {{출처|밀실에서 만난 뒤}}, 볼리바르는 페루를 완전 해방하는 과업을 맡는다. 산 마르틴은 갑작스레 페루를 떠나 군대 지휘관직을 그만두고 정계와 군대에서 물러났다. 그는 1824년 프랑스로 갔다. {{출처|7월 22일 회담의 내막은 이후 역사가들의 논쟁거리가 된다.}}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산 마르틴은 에스파냐로부터 남아메리카를 해방시킨 영웅이자 아르헨티나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를 기린 [[해방자 산 마르틴 장군 훈장]](''Orden del Libertador San Martín'')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높은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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