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아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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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정치체제 아래에서도 각각의 황제의 위치가 모두 동등한 것은 아니었다. 방위의 분담이 가장 큰 것이고 사실상 디오클레이티누스는 자신을 '''세니오르'''라고 부르면서 다른 황제들과 구별하였고 제국 전체에 대한 중요한 결정은 혼자 결정했다.
 
그는 내정개혁에 적극적이었다. 로마 [[원로원]]은 이미 유명무실해져 가고 있었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원로원의 입법기능을 상실시켰다. 그는 집정관을 자신이 임명하도록 하고 법안을 원로원 의결이 아닌 황제의 칙령으로 바꾸면서 이를 보좌할 일종의 전문 관료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로서이로써 행정업무는 전문화되고 문관과 무관의 분리는 더욱 심해졌고 관료의 숫자는 점점 늘어갔다. 이미 그의 치세에는 황제속주와 원로원 속주의 구별도 사라졌다.
 
또한 로마군단도 병력을 증강시켰는데 이는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제국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필요이기도 했지만 황제가 4명으로 늘어난 것에 따른 면도 있었다. 즉, 네 명의 황제가 각각 자기 휘하의 병력을 증강시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