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코쿠지 에케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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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
 
* 덴쇼 원년([[1573년]]) 음력 12월 12일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측근 [[이노우에 하루타다]] 앞으로 된 서장<ref>〈信長之代、五年、三年は持たるべく候。明年辺は公家などに成さるべく候かと見及び申候。左候て後、高ころびに、あおのけに転ばれ候ずると見え申候。藤吉郎さりとてはの者にて候〉</ref>을 보면 [[오다 노부나가]]가 점차 쇠하고, 그의 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하시바 히데요시]]가 약진할 것을 예상했다. 이런 일화로 볼때볼 때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로 보여진다보인다. 이에 파생된 이야기로 태합기에서는 무명의 히데요시에게 “당신은 장래에 천하를 취할 상을 가졌소”라고 예언해 그 뒤 히데요시로부터 영지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 시코쿠의 조소카베 가문의 외교승 히유와 함께 잇쓰보즈(一対坊主)<ref>잇쓰란 한쌍으로 묶어 설명할 때 쓰는 말이며, 보즈란 승려 중에 우두머리 즉 주지승을 가리키는 말이다.</ref>라고 불리었다.
* [[웅치 전투]]후,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성에 탄복하여 조선군의 유해를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조선의 충신 의사들의 영혼을 조상하노라(弔朝鮮國忠肝義膽)’라고 쓴 표목을 세웠다고 한다.<ref>[http://100.naver.com/100.nhn?docid=736303 두산백과_웅치전적지]</ref> 이 표목을 세운 인물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전투의 지휘는 안코쿠지 에케이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