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웨이펑: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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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중국 슈퍼리그]]의 [[선전 핑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에버턴 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2002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핸드폰]] 메이커 회사인 [[커즈안]]이 2년 동안 팀의 [[스폰서]]를 맡는다는 계약의 일환으로 [[에버턴 FC]]에 임대 이적하였으나, 코칭스태프에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단 1경기 출전에 그쳤고, 시즌이 끝난 뒤 [[선전 졘리바오]]로 복귀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308098 |제목=중국축구 리웨이펑, 에버튼 생활 마감 |저자=장익상 |출판사=연합뉴스 |작성일자=2003-01-21}}</ref> [[2006년]]이 시작되자, 그는 소속팀인 [[선전 졘리바오]]의 재정 문제로 인하여 팀을 떠나게 되었고, 많은 클럽이 그를 주시하였다. [[이탈리아 세리에 A]]의 [[ACF 피오렌티나]]의 관심을 받았지만, 600만 [[위안]]에 [[상하이 선화]]로 이적하였다.
 
그는 [[2005년]] [[5월 20일]] [[선전 졘리바오]] 소속으로 참가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신펑]]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여 팀의 1-0 승리에 공헌하였고, 팀은 1, 2차전 합계 결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승점에서 동률을 이룬 뒤 상대전적에서 1승 1무로 앞서, 팀의 8강 진출에 크게 기여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10&g_serial=153367 |제목=충격! 차붐 수원, AFC챔스리그 8강 탈락 |저자=최원창 |출판사=조이뉴스24 |작성일자=2005-05-25}}</ref> 하지만 [[2006년]] [[9월 20일]] [[상화이 선화]] 소속으로 참가한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제칼로]]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 [[레드카드]]를 받았고, 결국 팀은 1, 2차전 합계 결과 8강에서 탈락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 |url=http://sportalkorea.com/news_01/view.php?gisa_uniq=20060920212642 |제목=전북, 골폭풍 보이며 4강 안착 |저자=이상헌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작성일자=2006-09-20}}</ref> 경기 후 그는 팀의 감독인 [[우진 쿠이]]로부터 팀의 8강 탈락의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게 되었으며,<ref>{{뉴스 인용 |url=http://sportalkorea.com/news_01/view.php?gisa_uniq=20060920220144 |제목=상하이 감독, “리 웨이펑 퇴장이 컸다” |저자=이상헌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작성일자=2006-09-20}}</ref> [[아시아 축구 연맹]]으로부터 2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3천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는 중징계를징계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url=http://osen.mt.co.kr/news/view.html?mCode=soccer&gid=G0609230061&page=1179 |제목=AFC, 리웨이펑에 2경기 출장정지 처분 |저자=박상현 |출판사=OSEN |작성일자=2006-09-23}}</ref>
 
[[2008년]]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자, 그는 리그 준우승 팀인 [[상하이 선화]]를 떠나 350만 [[위안]]에 예전 [[선전 핑안]]과 [[중화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중화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주광후]]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우한 광구]]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8년]] [[9월 28일]] [[베이징 궈안]]과의 리그 경기에서 난투극에 휘말렸고, [[중화인민공화국 축구 협회]]로부터 6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8천 [[위안]]의 벌금을 부과받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 징계로 [[중국 슈퍼리그|1부리그]] 잔류에 매우 큰 타격을 입게 된 소속팀 [[우한 광구]]는 격렬히 항의하였지만 소용이 없자, 징계에 불복하여 심판을 폭행하고 잔여 경기를 거부하여 2008 시즌 전 경기가 몰수패 처리되고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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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리그로의 강등이 결정되자, [[우한 광구]]에 소속된 비연고 출신의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는 이적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리웨이펑도 이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많은 이적료, 6경기 출전 금지의 징계 때문에, 리그 내의 다른 수비수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적할 팀을 구하기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아시아 축구 연맹]]에서 '아시아쿼터제'를 도입하자, [[K-리그]]와 [[J리그]]의 여러 클럽들이 그의 영입을 원하였고, [[2009년]] [[1월 9일]] 2년 계약을 맺고 프로로 데뷔할 당시 [[선전 핑안]]의 감독이었던 [[차범근]]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면서 [[K-리그]]에서 뛴 최초의 [[중화인민공화국]] 선수가 되었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bluewings.kr/news/news_view.asp?seq=2653 |제목=수원, 中 대표 수비수 리웨이펑 영입 |저자= |출판사=수원 삼성 블루윙즈 |작성일자=2009-01-22}}</ref><ref>{{뉴스 인용 |url=http://sportalkorea.com/news_01/view.php?gisa_uniq=20090123175149 |제목=리웨이펑. 中 출신 1호 K-리거 영예 안을까? |저자=김성진 |출판사=스포탈코리아 |작성일자=2009-01-23}}</ref>
 
[[수원 삼성 블루윙즈]]으로 이적한 후에 가진 첫 경기인 시즌 전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친선 경기에서 퇴장당하였으나,<ref>{{뉴스 인용 |url=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pro/2009/0127/20090127101020100000000_6520263006.html |제목=거친 플레이 리웨이펑 '우려가 현실로?' |저자=위원석 |출판사=스포츠서울 |작성일자=2009-01-27}}</ref> [[2009년]] [[3월 11일]] [[가시마 앤틀러스]]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에서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리면서 팀의 4-1 승리에 공헌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03112111282239 |제목=수원, AFC 챔스 첫 경기서 가시마에 4-1 완승···리웨이펑, 수원 데뷔골 |저자=김종국 |출판사=마이데일리 |작성일자=2009-03-11}}</ref> 이후 [[2009년]] [[4월 7일]] [[상하이 선화]]와의 [[AFC 챔피언스리그]] 두번째세번째 경기에서 팀의 두번째 골을 터뜨렸으나, [[상하이 선화]]와의 홈 경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으로 공식 경기에서 첫 레드 카드를 받았다.<ref>{{뉴스 인용 |url=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134017 |제목=AFC는 리웨이펑을 미워하나봐 |저자=최원창 |출판사=일간스포츠 |작성일자=2009-04-23}}</ref> [[2009년]] [[10월 18일]] [[성남 일화 천마]]와의 리그 28라운드 경기에서 팀이 0-1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골을 성공시켰으나, 결국 팀은 2-3으로 패하여 6강 [[플레이오프]] 경쟁에서 탈락하였다.<ref>{{뉴스 인용 |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910181847392236 |제목=성남, 수원에 3-2 승리···수원, 6강 PO행 탈락 |저자=김종국 |출판사=마이데일리 |작성일자=2009-10-18}}</ref>
 
좋은 활약으로 [[K-리그 2009|2009년]]을 마무리한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로부터 높은 연봉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차범근]] 감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거절하였다.
 
=== 국가대표 경력 ===
[[1998년]] [[11월 22일]] [[상하이]]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의 친선경기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중화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고, [[1998년]] [[12월 12일]] [[방콕]]에서 열린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오만]]과의 [[아시안게임1998년 아시안 게임]] 경기에서 [[A매치]] 첫 득점을 올렸다.
 
그는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조별 예선 첫 경기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전을 제외한 전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팀이 4위를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하였으나, 팀은 16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후 [[2004년 AFC 아시안컵]]에서 결승전인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전을 제외한 전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팀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2007년 AFC 아시안컵]]에도 참가하였으나, 팀은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