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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태창제]]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나 형 [[천계제]]의 아들들이 모두 요절 하여, 천계제가 죽은 뒤, 제위에 올랐다. 즉위 곧바로, 형 천계제때 전횡을 떨친 환관 [[위충현]](魏忠賢)을 죽여, 명신으로서 유명한 [[서광계]](徐光啓)를 등용하는 등 국정 개혁에 임한다.
[[1644년]] [[이자성]] 반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목을 매어 자살했다.
 
당시는 북쪽으로 만주족의 후금이 침입해오고, 남쪽에서는 이자성의 반란이 일어나서 명나라으로선 어려운 시기였으며, 숭정제는 이 상황을 모면하려 노력했다.
 
숭정제는 천계제와 달리 정치에 열심이고, 정사에 빠지는 일도 없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의심(猜疑心)이 강하고, 가신을 신용할 수 없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즉위 직후부터 신하를 차례 죽였고, 특히 산해관에서 만주족으로 부터의 방어를 혼자서 맡고 있던 명장 [[원숭환]]을 죽인 일은 치명적이었고, 명나라가 멸망한 원인은 숭정제의 시의심을 들 수 있다. 재위 17년간에, 숭정제에 의해서 살해당한 신하는 총독(総督) 7명, 순무(巡撫) 11명에 달해, 그 외 파면된 사람도 다수 있어 이것이 신하들의 현저한 사기의 저하를 부르게 되었다.
 
숭정제는 [[이자성]] 반란군에 차례로 토벌군을 보내지만, 그 이자성 토벌군을 조직 하기 위해 증세를 실시한 일로 인해 궁핍한 민중들이 이자성 반란군에 참가해, 완전한 역효과였다.
 
[[1644년]], 이자성군은 북경을 포위하여, [[3월 19일]]에 북경은 함락되었다. 숭정제는 위급을 알리는 종을 울렸지만, 신하들이 모두 도망가서, 환관 왕승은(王承恩)만 혼자 있었다. 숭정제는 아들들을 자금성으로부터 탈출시키고, 처첩과 딸들을 살해하고, 자금성의 북쪽에 있는 경산(景山)으로 가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다.
 
== 묘호의 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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