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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성 ==
 
세종이 즉위한 뒤에 문신을 집현전에 모아 문풍을 진흥시키자는 신하들의 건의가 있어서, 그 동안그동안 고려 이래로 유명무실하였던 수문전(修文殿)·집현전·보문각(寶文閣) 중에서 집현전 하나만을 남기는 대신 그 기구를 대폭적으로 확장시켰다. 즉 [[1420년]](세종 2) 3월에 궁중에 집현전을 두고, 겸임관으로 영전사·대제학·제학을 두고, 그 아래에는 모두 전임 학사(前任學士)에서 뽑았다. 이와 동시에 전임학사(專任學士)로서 10명을 임명, 그 뒤 정원의 증감이 있다가 [[1436년]](세종 18)에는 20명으로 확정되었다. 세종은 학사의 설치와 아울러 서리(書吏)·노비(奴婢) 등도 배속시켜 집현전의 운영에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또 학사들의 연구에 편의를 주기 위해 많은 도서(圖書)를 구입 혹은 인쇄시켜 집현전에 보관토록 하는 한편, 휴가를 주어 산사(山寺)에서 뜻대로 학문 전반에 걸쳐 연구하게 하였으며, 그 경비와 기구는 모두 나라에서 부담하였다. 이 결과 우수한 학자들이 집현전을 통하여 많이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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