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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 (1663년-1664년)''' 혹은 '''제4차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은 [[합스부르크 군주국]](Habsburg Monarchy)과 [[오스만 제국]]사이에서 벌어진 짧은 전쟁이다. 합스부르크 군대를 지휘하는 [[라이몬도 몬테쿠콜리]](Raimondo Montecuccoli)는 [[생 고타르 전투]](Battle of Saint Gotthard)에서 빈을 향해 진군하던 오스만 군대를 멈추게 하는데 성공했다. 오스만이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스바르 조약]]에 의해 유리하게 전쟁을 끝났다.
 
== 서막 ==
[[트란실바니아]]의 [[죄르지 라코치 2세]](György Rákóczi II) [[프린스|공]](Prince)이 오스만 제국의 허락없이 1658년 폴란드를 침공한 것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트란실바니아는 1526년 [[모하치 전투]] 이후 오스만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조공을 바치는 대신 정치와 종교적 자유를 얻었다. 라코치의 비공인된 전쟁 소식을 듣자 오스만 제국은 자신의 속국에 선전포고했다. 오스만 제국의 [[대 비지르]](Grand Vizier) [[쾨프륄뤼 메흐메드 파샤]](Köprülü Mehmed Pasha (Vizier 1656-1661)는 라코치의 군대를 격파하고 트란실바니아를 정복했다. 트란실바니아 후계자 [[야노슈 케메니]](János Kemény)는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빈으로 도망쳤다.
 
1661년부터 크로아티아의 [[반 (칭호)|반]](Ban) [[미클로스 즈리니]](Miklós Zrínyi)는 오스트리아와 오스만 사이에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노비 즈린]](Novi Zrin)을 근거지로 계속해서 오스만 제국 영내에 대한 습격을 가하고 있었다. 습격과 몬테쿠콜리 군대의 진주로 오스만 제국은 1606년 이후 계속되어온 현상유지 정책을 깨고 전쟁에 돌입했다.
 
== 1663년 캠페인 ==
[[Image파일:Raimondo-montecuccoli.jpg|thumb|라이몬도 몬테쿠콜리 백작]]
 
1663년 여름, [[대 비지르]] [[쾨프륄뤼 파즐 아흐메드]](Köprülü Fazıl Ahmed)는 100,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합스부르크령 헝가리]]로 진격했고 9월 [[노베 잠키]](Nové Zámky)를 점령했다.
황제 레오폴드 1세는 1663년 1월 [[제국 의회]](Imperial Diet)를 소집해 독일과 유럽 국가 왕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성공을 거두었다. 30,000명의 바이에른, 브란덴부르크, 작센군이 지원되었다. 심지어 오랜 적대자 루이 14세가 [[장 드 콜리니-살리니]](Jean de Coligny-Saligny) 지휘하의 6,000명의 프랑스군을 보내기도 했다.
 
== 1664년 캠페인 ==
1664년 초, 제국군은 세 갈래로 나뉘어 진군했다. 남부는 미클로스 즈리니가 이끄는 17,000명의 헝가리-크로아티아군, 중앙은 몬테쿠콜리가 이끄는 28,500명의 주력군, 북부는 [[장 루이 라두 드 수쉐]](Jean-Louis Raduit de Souches)가 이끄는 8,500명의 병력이 맡았고 12,500명은 요새 수비병으로 남겨졌다.
 
오스만군은 진군을 계속해 [[노비 즈린]]를 포위했다. 몬테쿠콜리는 노비 즈린에 구원을 가지 않았고 결국 도시는 오스만 제국에서 점령되었다. 이는 1664-1670년 일어난 [[즈린스키-프란코판 반란]](Zrinski–Frankopan conspiracy; 즈린스키와 프란코판가 귀족들이 합스부르크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의 원인이 된다.
 
== 생 고타르 전투 ==
[[Image파일:Mogersdorf1.jpg|thumb|모게르스도르프 전투/생 고타르(스젠고타르;Szentgotthard) 1664)]]
{{main|생 고타르 전투 (1664년)}}
 
수쉐가 이끄는 북부군은 몇몇 전투에서 쿠츠크 메흐메드 파샤(Kutschuk Mehmed Pascha)가 이끄는 오스만군을 격파했다. 이 승리들 중 [[레비체 전투]](Battle of Levice)에서 거둔 승리가 가장 중요했다.
 
== 바스바르 조약 ==
{{main|바스바르 조약}}
 
생 고타르 전투가 있은지 9일 뒤인 1664년 8월 10일, 20년간 지속되는 바스바르 조약이 체결되었다. 합스부르크의 결정의 주요 요인은 프랑스가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에 있는 더 많고 값어치 있는 합스부르크 영지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오스만의 [[트란실바니아]]와 [[노베 잠키]]의 지배를 인정했고, 전쟁 배상금을 지불했다. 노비 지린은 비워졌다.
 
== 결과 ==
크로아티아와 헝가리에서는 생 고타르에서의 승리에 비춰진 솔선수범과 추진력을 인정받았으나 불행하게도 자신들의 영토를 잃고 말았다. 이것은 후에 [[즈린스키-프란코판 반란]]으로 이어졌다.
 
[[분류:헝가리의 전쟁]]
[[분류:17세기]]
 
 
{{Link FA|hu}}
[[it:Guerra austro-turca (1663-1664)]]
[[pl:IV wojna austriacko-turecka]]
[[ru:Австро-турецкая война (1663-16641663—1664)]]
[[tr:1663-1664 Osmanlı-Avusturya Savaş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