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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는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난 후, "10월의 교훈"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는 1917년의 여러 사건들을 광범히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트로츠키는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볼셰비키 무장봉기를 반대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이것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자극하여 반트로츠키 삼두동맹의 2차 국면을 전개시켰다. 지노비예프와 그 추종자들은 트로츠키가 러시아 내전에서 범한 여러 과오들을 들춰내었고, 이것은 트로츠키의 군사적 명성에 흠집을 내어, 1925년 1월 트로츠키는 전쟁인민위원에서 사퇴할 수 밖에수밖에 없었다. 지노비예프는 한발 더 나아가 트로츠키를 당에서 축출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트로츠키와 앙숙인 스탈린은 예상외로 이를 반대하였다. 스탈린은 이 국면에서 능숙하게 중도적인 입장을 가장하고 있었다.
 
== 스탈린과 결별하다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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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소련의 비밀경찰 내무인민위원회(NKVD)의 치밀한 각본과 준비 끝에 지노비예프 및 14명은 다시 기소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레닌의 동지인 고참 볼셰비키였다. 이번에는 이들에게 키로프를 암살하고, 스탈린을 암살미수하려는 테러조직을 구성한 혐의가 추가되었다.
 
이 재판은 첫번째첫 번째 [[모스크바 각본 재판]]으로서 "트로츠키-지노비예프 파 테러조직 재판""또는 16인의 재판"이라고 불린다. 이 각본 재판에서 피고들은 간첩활동, 독살, 사보타지 등의 극악무도한 죄를 범했다고 자백하였다. 다른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지노비예프는 유죄판결을 받고 1936년 8월 25일에 처형되었다.
 
지노비예프 등의 처형은 그동안 금기시 되어 오던 고참 볼셰비키 혁명동지에 대한 처형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 이전에는 스탈린조차도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 파의 혁명동지들에 대한 처형의 악순환을 경고하면서, 불구대천의 앙숙이었던 [[트로츠키]]조차도 처형 대신 유배나 국외추방으로 처리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1937-1938년에는 보다 대대적인 체포와 처형이 벌어져서 고참 볼셰비키들은 대부분 스탈린의 비밀경찰의 손에 최후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