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매싱 펌킨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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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던 [[빌리 코건]]은 19살 때 고딕 락밴드 [[더 마크드]]와 함께 그의 고향이었던 [[시카고]]를 떠나 [[플로리다 주|플로리다]]의 피터스버그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밴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해체되었고, 그 뒤 코건은 시카고로 돌아와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일하는 동안 그는 기타리스트 [[제임스 이하]]를 만났는데, 둘은 곧 친해져 [[더 큐어]]와 [[뉴 오더]]에 영향을 받은 곡을 쓰기 시작했다. [[1988년]] 코건은 베이시스트 [[디아시 레츠키]]를 만나게 된다. 레츠키가 베이시스트란 사실을 안 코건은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주며 밴드 가입을 요구했고, 머지않아 레츠키가 밴드에 들어오게 되었다. 레츠키와 이하는 후에 짧은 로맨스를 가졌다.
 
[[1988년]][[7월 9일]] 스매싱 펌킨스는 폴리쉬 바 시카고21에서 첫번째첫 번째 공연을 열었다. 코건과 이하, 그리고 드럼머신만이 이 공연에 참가했다. [[1988년]][[10월 10일]] 아발론 나이트클럽에서 밴드는 처음으로 3명이서 공연을 개최했다. 이 공연 뒤에 카바렛 메트로의 오너 조 사나한은 드럼머신을 진짜 드러머로 바꾼다는 조건하에 그들과 계약한다. 후에 코건의 친구의 추천으로 [[재즈]]드러머 [[지미 체임벌린]]이 들어온다.<ref>[[2004년]] 1월, "지미 체임벌린 [인터뷰]", 모던 드러머. </ref> 그는 락에 대에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들과 맞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빌리 코건은 그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치유계의 슬픈 락에 심취해 있었어. 두세번의 연습후에 난 그의 연주에 깃들어 있는 힘을 깨닫게 됐지. 그건 우리를 연주에 더 열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는데 그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야."<ref>[[2002년]] 1월, 그레그 코트. "펌킨 시드", 기타 월드.</ref>[[1988년]] [[10월 5일]]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춘 밴드는 카바렛 메트로에서 첫번째첫 번째 공연을 열었다.
 
[[1989년]], 스매싱 펌프킨은 몇몇 시카고 [[얼터너티브 록]]밴드가 참여한 편집된 앨범 "Light Into Dark"로 레코드에 첫번째첫 번째 모습을 드러냈다. [[1990년]] 로컬 시카고 라벨 리미티드 포텐셜에서 그들은 첫번째첫 번째 레코드이자 리미티드 에디션 싱글인 《I Am One》을 발표했다. 이 싱글은 매진되었고 그들은 Caroline Records에 사인을 한 뒤 서브 팝(Sub Pop)레코드에서 또 다른 싱글인 《Tristessa》를 공개한다.
[[1991년]]에는 프로듀서 벗치 비그와 [[위스콘신]]주의 [[메디슨]]의 스마트 스튜디오에서 20,000달러를 위해 데뷔앨범인 《Gish》를 발매했다.<ref>1991-06-21일, 그레그 코트. "Out of the Patch for Smashing Pumpkins, New Albem Is Another Sigh of Liftoff", [[시카고 트리뷴]]</ref> 그가 원하던 것을 얻기 위해 코건은 드럼을 제외한 모든 악기를 연주해 밴드에 긴장감을 주었다. 이들의 음악은 [[헤비메탈]]기타, [[사이키델릭]], [[드림 팝]]이 융화되어 [[제인스 애딕션]](Jane's Addiction, 얼터너티브 록 밴드)과 자주 비교되었다.<ref>[[1996년]] 1월, 제임스 로톤디. "오렌지 교회", 기타 플레이어.</ref> [[Gish]]는 [[모던 록]] 라디오에서 녹화방송으로 나가곤 했던 싱글 《Rhinoceros》과 함께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91년]] 10월 캐롤라인 레코드사에서 《[[Lull EP]]》의 발표 후에 밴드는 캐롤라인 레코드사와 제휴중인 버진 레코드사에 사인했다.<ref>1996-10-01, 제인 키들. "Patchin' It Before Together", Hartford Advocate.</ref> 밴드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제인스 애딕션", "[[건즈 앤 로지스]]"등과 함께 오프닝을 같이하기도 하는 등 투어를 하며 지속적으로 앨범을 홍보했다. 투어동안 이하와 레츠키는 복잡한 이별을 했으며 체임벌린은 마약과 술에 중독되었고, 코건은 그가 살던 곳의 주차장에서 새 앨범을 위한 곡을 쓰며<ref>2000-08-08, 다란 데이비스, "Smashing Pumpkins Billy Corgan Leaving Hometown of Chicago". 야후!뮤직</ref>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ref>1998-08-03, 로버트 힐번. "Smashing Pumpkins Endures When (and What) Other '90s Bands Couldn"t", [[로스앤젤레스 타임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