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테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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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4일에 있던 경기에서 테리는 첼시의 원래 키퍼였던 [[페트르 체흐]]와 [[카를로 쿠디치니]]가 이 게임에서 부상으로 빠짐에 따라 골대를 넘겨 받아야만 했었다. 그는 3번키퍼인 [[엔리케 일라리우]]가 입는 40번을 입고 골문을 지켰다. 하지만 게임이 재개된지 몇분 후 테리는 세이브를 해내지 못했다.-사실 그의 키퍼능력은 페널티킥을 막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첼시는 한 골차 승리를 지켰고 테리는 무실점경기(클린시트)를 기록했다. 2006년 11월 5일 [[토튼햄 핫스퍼]]와의 경기에서 테리는 첼시선수로 뛴 기간 가운데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다. 테리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첼시가 질때 1987년 이래로 처음으로 2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았다. 테리는 경기가 끝나고 경기주심이었던 그라함 폴의 공평서에 의문을 제기해 오심을 F.A.에 항의했고 2007년 1월 10일 존테리는 그의 마음을 바꾸고 죄를 인정한 후 FA로부터 부적당한 행동으로 £10,000 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2006-20007시즌에 그의 등부상 재발로 여러 경기를 놓치게 되었다. 후에 2006년 12월 26일 레딩과 비긴경기에서 [[조세 무리뉴]]는 그의 주장이 문제를 해결키위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빠진 경기에서 첼시는 6골을 허용했다. 12월 28일에 첼시는 언론에 테리가 등수술을 했다고 말했다.:부골화된 요추추간판 탈출증(허리디스크)을 없애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록 그는 위건과의 경기에서 복귀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테리가 만약 등부상이 재발된다면 다시 한번 경장하게 될 것이다. 그는 찰튼과의 2007년 2월 3일 경기에서 복귀하고자 한다. 그는 거의 3달전인 미들스브러와의 경기에서 첫번째첫 번째 풀타임을 기록했고 첼시의 충성스러운 팬들로 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비록 포르투와의 UEFA챔피언스리그 16강 토너먼트에서 출전하기는 했지만 그는 또 다른 부상에 시달렸다. 이번엔 발목부상이었다. 이 때문에 2007 리그컵 결승에서 아스날을 상대로한 결승에 결장할 계획되었지만 며칠 내에 부상에서 복귀했고 결승에서 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경기 후반 도중에 공격코너에서 그는 공을 향에 다이빙헤딩을 했고 아스날의 [[에두 디아비]]가 공을 걷어내는 시도를 했고 테리의 얼굴을 찼다. 테리는 수분동안 정신을 잃었고 그의 혀를 거의 삼킬뻔했다. 이 때 세브첸코가 그의 기도를 확보해주었고 옆에 있던 아스날 담당의에 의해 응급치료를 받고 경기장에서 들것에 실려나갔고 즉시 웨일스 대학병원로 후송되었고 그는 여기서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는 같은 날 스스로 퇴원했으며 밀레니움 스타디움에 가서 그의 팀의 2-1 승리를 축하했다. 그는 오직 후반전을 치루기 위해 경기장을 올라갔던 것만 기억했고 그가 부상당하기 10분전부터는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 사고 후, 테리는 그의 목숨을 구해준 아스날의 팀닥터인 게리 루인에게 감사해 했다. 게리 루인는 테리가 그의 숨통을 혀로 막은 후 그를 돕기 위해 처음으로 달려간 의사 이다. 벤치에서 2주를 보낸후 그는 3월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복귀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4강에 첼시를 올려놓았고 4년간 세번째로 첼시가 4개의 경기에서 모두 결승에 오르게 했다. 2007년 FA컵에서 뉴웸블리스타디움 첫번째첫 번째 결승에서 첼시의 주장으로 나섰다.
 
2006-2007시즌 직전에 받은 새로운 재계약에대해 동의하는 것을 실패하였지만 테리는 첼시를 떠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7월 말에 그는 기본적인 주급은 £131,000에서 £135,000이고 이 주급은 그를 이 당시에 최고로 높은 주급을 받는 선수로 만들어준 새로운 5년 재계약에 사인하였다. 8월에 램파드는 테리의 주급을 능가하는 주급 £151,000에 재계약해 프리미어리그 최고 주급자가 되었다. 2007년 12월 16일에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공을 걷어내는 테리의 발을 [[엠마누엘 에부에]]가 지나갔고 테리는 그의 발에 3개의 불어진 뼈로 고통스러워 했었다. 그는 적어도 3달이상 결장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빠른 회복으로 토트넘과의 2008 리그컵 결승에서 주장직을 수행하게되었고 첼시는 이 경기에서 2-1패배를 당했다. 2008년 5월 11일에 볼튼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그는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와 충돌했고 부분탈구된 팔꿈치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 부상은 그를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그가 플레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의 선제골을 먹히고 프랭크 램파드의 동점골로 인해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갔다. 체흐에 의해 호날두는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첼시가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만약 테리가 골을 넣었다며 첼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패널티킥을 실축하였다. 차는 순간 그의 발 중심축이 미끄러져버려 골을 넣치 못했고 이후 니콜라스 아넬카마자 실축하면서 첼시는 승부차기에서 6-5로 패배하였고 테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는 빗물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욕할 수 없었다. 첼시를 결승전까지 이끌고 온 사람은 바로 테리였기 때문이다. 《존 테리의 눈물》 사건은 2007~08시즌 EPL 결산 10대 순간 1위에 선정 되었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news/2008/0528/20080528101020202000000_5577338701.html EPL 지난시즌 10대 순간 '존 테리의 눈물' 1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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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맨체스터시티는 테리에서 세번째 거래를 만들었지만 첼시의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는 테리가 첼시에 남을 거라 주장하여싿. 존 테리는 그의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시즌 데뷔를 헐시티 상대로 했고 이 경기에서 첼시는 이겼다. 2009년 11월 8일에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이번 시즌 완벽한 홈경기 기록을 지키는 결정적인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0년 1월 30일 같은 잉글랜드 국가대표이자 첼시에서 함께 뛰기도 했던 [[웨인 브릿지]]의 애인인 [[바네사 페론첼]]과 불륜관계에 있음이 들통나 전세계전 세계 축구팬들을 경악하게 했으며, 이로 인하여 잉글랜드 주장직을 박탈당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7&aid=0000244852 존 테리, 동료 애인 바네사 페론첼과 불륜관계…영국전역 충격]</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15&aid=0002194635 존 테리, 결국 퍼디낸드에게 주장자리 내놓다!]</ref>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인 브릿지에게 사과는 하지 않고 [[프리미어리그 2009-10]]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 웨인 브릿지와 악수를 하겠다고 하여 많은 비난을 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343&aid=0000001321 존 테리 “웨인 브릿지와 악수하겠다”]</ref> 이는 웨인 브릿지가 악수를 거부하면서 존 테리의 망신으로 이어졌다.
 
===국가대표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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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잉글랜드스쿼드에서 그의 자리를 2006 FIFA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로 채택되며 굳혔다. 2006년 5월 30일 헝가리와의 월드컵전 토너먼트에서 테리는 잉글랜드국대로 첫골을 기록하였고 이 골은 팀의 두 번째 골이었고 잉글랜드는 3-1승리를 거뒀다.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에서 부상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회복되어 잉글랜드의 파라과이와의 예선 첫경기에서 1-0승리를 이끌어싿. 그 다음 경기였던 트리디나드 토바고와의 경기에서 카를로스 에드워즈가 잉글랜드의 [[폴 로빈슨]]과 다투는 사이 [[스턴 존]]이 흘러나온 공을 골을 넣기위해 헤딩을 시도했고 테리는 골라인에서 오버헤드킥으로 공을 걷어냈다. 포르투갈과의 8강 경기에 테리는 풀타임 출장했지만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그는 그의 동료들과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6일 후 그는 잉글랜드 선수로는 유일하게 월드컵 올스타팀에 이름을 올렸다.
 
2006년 8월 10일에 스티브 맥클라렌은 존 테리를 데이비드 베컴의 뒤를 잇는 잉글랜드 주장으로 임명하엿다. 맥클라렌이 말하길:"주장을 선정하는 것은 감독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중에 하나이다. 나는 존테리를 선택한 것이 옳은 결경이라 확신한다. 나는 그가 잉글랜드 최고의 주장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라 확신한다. " 테리는 잉글랜드 주장으로서 데뷔경기인 그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다. 이것은 이 경기에서 첫골일 뿐 하니라 맥클라렌이 잉글랜드 감독 데뷔후 첫골이었다. 그가 그의 새로운 주장 암밴드에 키스하는 것으로 골 세레머리를 했다. 하지만 테리가 주장으로써 잉글랜드는 유로 2008에 지역예선 탈락했다-이것은 1994년 월드컵이후 결선토너먼트에 첫번째로첫 번째로 빠지는 것이다. 지역예선 도중에 테리는 잉글랜드가 탈락할지 모른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2007년 7월 1일에 테리는 뉴웸블리스타디움에서 성인잉글랜드국가대표선수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 골을 기록하엿다. 이 경기에서 그의 골로 브라질과 1-1로 비겼다. 그는 데이비드 베컴이 올린 프리킥을 박스안에서 헤딩해 골을 넣었다. 거의 1년이 다되서 그는 다시 한번 데이비드 베컴이 올린 공을 비슷하게 헤딩골로 연결했는데 미국과의 2008년 5월 28일 경기로 잉글랜드는 1-0승리하였다.
 
테리는 8월에 잉글랜드 주장을 확인하고 잉글랜드주장으로 2010월드컵예선에 출전하엿다. 그의 지속적인 잉글랜드주장으로서의 복귀경기는 밀란 바로스에 의해 몹시 힘든 경기였는데 밀란 바로스를 너무 쉽게 몸을 돌리게 해 체코에 첫골을 허용케 했다. 이 경기는 2-5 무승부로 끝났고 조콜은 92분에 동점골을 뽑아냈다. 그는 그의 2010월드컵 예선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경쟁이 심한 잉글랜드에서 첫번째첫 번째 골을 기록하였다. 다 잡은 경기를 나중에 쉬운 프리킥찬스를 내줬고 [[안드리 세브첸코]]가 동점골을 넣어 비겼다.
 
2010년 1월 30일에 전 첼시 동료이자 국가대표 동료인 [[웨인 브릿지]]의 전 여자친구와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파비오 카펠로]] 잉글랜드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 주장직을 박탈당했고 그의 뒤를 이어 [[리오 퍼디난드]]가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파비오 카펠로]]는 월드컵 전까지 그가 주장완장을 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로 인해 [[웨인 브릿지]]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