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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대에는 현재 [[허베이]](河北)의 북쪽 지역에 실직적인 군 통치자인 범양(范陽) 절도사 본부를 설치하였다. [[755년]] 이 곳에서 [[안사의 난]](安史之乱)이 일어났기 때문에 보통 이 지역을 당 왕조가 중앙정부로써의 전 지역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여긴다.
 
[[936년]] [[후진]](晋)은 현재 베이징을 포함한 북부의 넓은 영토를 거란의 요(遼)에게 대부분 빼앗겼다. [[938년]]에 요(遼)는 지금의 북경에 두 번째 수도를 건립했고 그것을 남쪽의 수도라는 뜻인 [[난징|남경]](南京)으로 불렀다. 1125년 여진의 금(金)왕조는 요를 합병하고 1153년 수도를동북의 요(遼)의회령에서 남경으로이곳으로 이동하여천도하여 이곳을중앙수도라는 중앙수도인뜻의 중도(中都)라고 불렀다개칭했다.
 
[[1215년]]에 [[몽골]]이 중도를 불태우고 1267년에 북쪽에서 상도(上都) 수도의 북쪽으로 다시 재건하였다건설했다. 중국의 전 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로 원(元)왕조의 시조 [[쿠빌라이 칸]]은 이곳을 汗八里(Khanbaliq)(위대한 칸의 거주지라는 뜻) 혹은 대도(大都)라는로 개칭하여 이름으로수도를 수도로삼았고 건립했고 이위치는위치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 속에 Cambuluc 로써 잘 나타나 있다. 확실히 이곳이 그의 힘의 근간인 몽골과 가까웠기 때문에 중국황제가 되기를 원했던 쿠빌라이 칸은 중원의 좀 더 전통적인 곳을 대신해 이곳에서 그의 수도를 설립했다. Khanbaliq는 현대 중앙 베이징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1368년]] 원의 멸망 후 도시는 명(明)조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고 순천(順天)지사 관저가 도시의 주위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1403년]] 3번째 [[명나라]] 황제였던 문황제(文皇帝)는 수도를 남경(南京)에서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북쪽 수도란 뜻으로 개명한 북경(北京)으로 옮겼다. 수도는 또한 경사(京師)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단순히 수도라는 뜻이다. 명(明)조 동안 베이징은 현재의 모양이 잡혔고 명나라의 성곽은 현대에 그것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얼환루(二環路)가 세워질 때까지 베이징의 성곽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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