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렝겔라 나바라 왕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잔글
리처드 1세가 [[동성애자]]였다는 학설이 지지를 얻는 가운데, 많은 학자들이 베렝가리아와 리처드 1세 사이에 성관계는 없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리처드 1세가 베렝가리아가 아니라 베렝가리아의 오빠였던 [[나바라의 산초 7세|산초 7세]]와 연인관계였다는 설도 있다.
 
리처드 1세는 [[오스트리아]]에 유폐당했다가 잉글랜드로 돌아온 후에도 베렝가리아와 함께 지내지 않았다. [[교황 첼레스티노 2세]]는 리처드 1세에게 아내와 제대로 된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을 명했다. 이 때이때 교황은 리처드 1세를 특별히 사면하면서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 후 리처드 1세는 매주 한번씩 베렝가리아와 함께 교회에 갔다.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199년]] 리처드 1세가 서거하자 베렝가리아는 진정으로 비탄에 빠졌다. 왕위에 오른 [[잉글랜드의 존|존 왕]]은 베렝가리아에게 선왕의 미망인으로서 받아야 할 연금을 주려 하지 않았고, 교황 첼레스티노 2세와 아키텐의 엘리오노르가 압력을 넣었을 때야 연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편집

56,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