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부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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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부인'''(碧花夫人, [[484년]]<ref>《[[삼국사기]]》신라본기 [[소지마립간]] 22년(500년) "名曰碧花 年十六歲"</ref>~?)은 신라의 21대 왕 [[소지마립간]]의 비(妃)이자 23대 [[법흥왕]]의 후궁이었다. 《[[삼국사기]]》에서는 아버지가 날이군(捺已郡)의 군인(郡人) 파로라고 하였으며,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어머니가 소지마립간의 후궁인 [[벽아부인]](碧我)이라고 기술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00년]] 음력 9월에 소지마립간이 날이군에 행차하였는데, 그 때그때 파로가 당시 16세이던 딸 벽화를 소지마립간에 바쳤는데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마립간은 처음에는 거부하였으나, 결국 그녀를 맞아들였고, 아들을 낳았다. 소지마립간은 이 해 음력 11월에 훙서하였다. <ref>《삼국사기》신라본기 소지마립간 조 "王聞之大慙 則潛逆其女 置於別室 至生一子 冬十一月 王薨" </ref>
《필사본 화랑세기》에 따르면, 벽화부인이 소지마립간의 총애를 받으면서, 그녀의 이부동모제(異父同母弟)인 위화랑 또한 궁을 드나들며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