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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곧 [[로마교회]]는 알미니안주의로 회귀하게 되는데, 다시 어거스틴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이 종교개혁자들을 통해서였다. 종교개혁 당시 이러한 어거스틴주의식 원죄론에 반대하고 '사람은 하나님이 심성을 따로 바꾸어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 [[에라스무스]]다. 여기에 반박하고 '전적 타락'설을 주장한 것이 [[마르틴 루터|루터]]의 《노예의지론(Bondage of the Will)》이다. [[에라스무스]]의 주장은 합력설에 해당하며, [[마르틴 루터|루터]]의 주장은 단독설에 해당된다. 합력설과 단독설의 논쟁은 기독교 초창기에 이미 있었고, 잘 알려진 것이 4~[[5세기]]에였 있었던 [[영국]]의 [[신학자]]인 [[펠라기우스]]와 교부 [[어거스틴]] [[주교]]와 논쟁이다. [[펠라기우스]]는 합력설을 주장하
 
종교개혁 이후로는 17세기에 [[알미니우스]]를 따르는 [[알미니안주의]]자들이 합력설을 주장하였다. 이 때이때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도르트 총회]]에서 작성된 것이 '[[개혁주의 (신학)|칼빈주의의 5대 강령]]'이다.
 
[[18세기]]에는 [[성공회]] [[사제]]이자 [[감리교회]] 창시자인 [[존 웨슬리|웨슬리]]가 합력설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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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과, 한 번 그리스도를 믿고 나온 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이론의 근거로 자주 등장한다.
<blockquote>"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에베소서]] 1:4)</blockquote>
위 구절은 하나님의 선택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루어진 것이란 이론의 근거로 종종 쓰인다. 이 때이때 "창세 전"이란 시간조차 창조 되기 전, 즉 시간을 초월한 신의 영역에서의 결정이란 뜻으로 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시간이란 축 위에서 과거의 어떤 시점에 미래의 일이 결정되었다는 운명론과는 차이가 있다.
<blockquote>"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blockquote>
위 구절은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의지나 선택에 상관 없이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란 이론의 근거로 종종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