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9월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WaffenSS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WaffenSS (토론 | 기여)
잔글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검은 9월단'''은 [[1972년]] 하계 올림픽|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상대로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계열의 저항 단체이다. '''“검은 9월”'''이란 이름은 아랍계 [[게릴라]]가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0년 9월을 의미하며, 아랍게릴라 4명이 같은 해 11월 [[요르단]] 총리인 탈을 [[카이로]]의 호텔에서 보복-암살하면서 자기들 조직을 스스로 '검은 9월단'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검은 9월단 사건==
1972년 9월 5일 새벽 4시, 운동선수 복장을 한 8명의 괴한들이 [[서독]] [[뮌헨]]의 [[올림픽]] 선수촌 담장을 넘었다.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이들 괴한들은 곧바로 28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이 묵고 있던 숙소로 침입했다. 그리고 이어진 총성과 비명.
 
이스라엘 선수들은 재빨리 창문을 통해 몸을 피했지만 이미 2명은 죽고 9명은 인질로 붙잡힌 상태였다.복면을 한 괴한들은 자신들을 [[팔레스타인]] 무장저항단체 ‘검은 9월단’ 소속이라고 밝히며 이스라엘이 억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포로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서독경찰은서독 경찰은 이들과 수차례의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 결국 총격전이라는 강경책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인질 9명 모두가 숨졌고, 테러범들도 사살 또는 생포됐다.
 
‘검은 9월’은 아랍게릴라가 [[요르단]] 정부군의 토벌작전으로 큰 타격을 받은 1970년 9월을 의미하며, 아랍게릴라 4명이 같은 해 11월 [[요르단]] 총리인 탈을 [[카이로]]의 호텔에서 보복-암살하면서 자기들 조직을 스스로 '검은 9월단'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당시로서는 올림픽사상 최대규모인 1백22개국 7천1백47명의 선수가 참가, 가장 화려한 대회가 될것으로 장담했던 뮌헨올림픽은 이로써 유혈대회로 변하고 말았다.
 
== 사건 배경 ==
이 사건은 당시 요르단이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이집트]]가 대미 접근을 시도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가 자기들의 존재를 과시, 세계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
 
== 사건의 여파 ==
이 테러사건은 그후 테러의 악순환을 낳았고 그 여파는 오늘날에도 중동에 남아 피를 부르고 있으며, 제대로 된 대테러 전문부대가 없어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반성으로 세계 각국은 이 사건 이후 대테러전문 특수부대를 양성하여 유지하고 있다. 특히 무대가 되었던 독일은 경찰 직할의 [[GSG-9]]을 창설했고, 독일 연방군에서는 [[KSK]]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현재도 운용하고 있다.
 
== 대충 매체 ==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05년에 개봉한 영화《[[뮌헨 (2005년 영화)|뮌헨]]》은 이 사건과 이 사건 후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가 주도한 보복작전을 다루고 있다.
 
[[분류:1972년]]
줄 16 ⟶ 21:
[[분류:테러 단체]]
[[분류:테러 사건]]
[[분류:독일의 역사]]
[[분류:이스라엘의 역사]]
[[분류:팔레스타인]]
 
[[bg:Черен септември (организаци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