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 페드로비치 간니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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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조사에 의하면, [[차드 호수]](Lake Chad) 남부의 현재 [[카메룬]](Cameroon)에 로코네-빌니(Logone-Birni)란 [[술탄]]이 있어서 여기가 그곳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있다. 간니발이 1742년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옐리자베타 여제]](Empress Elizabeth)에게 제출한 공식 서류에서는 [[귀족]]의 지위와 문장을 위한 청원서가 쓰여 있는데, 그는 코끼리와 신비스런 문자 ''FVMMO''라고 쓴 것을 가문(家紋)으로 사용할 권리를 인정하길 원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서아프리카의 [[코토코]](Kotoko)가 고향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FVMMO는 [[라틴어]]의 "Fortuna Vitam Meam Mutavit Oppido" ; 행운이 이 도시에서 나의 인생을 변하게 했다(Fortune has changed my life in the city)의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이도 있다.
7살 때 (1703년 경), 간니발은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곁으로 보내졌다.그해 술탄의 자리는 [[무스타파 2세]](Mustafa II , 치세 1695년-1703년)에서 [[아흐메드 3세]](Ahmed III , 치세 1703년-1730년)로 옮겨졌다. 그 자신의 이야기로써 필자 불명으로 알려진 간니발의 [[독일어]] 자서전에서는 "모든 이슬람교 지배자 말하자면 투르크의 술탄은 귀족 가문에서 인질로써 아이를 인질로 요구했다."(the children of the noble families were taken to the ruler of all the Muslims, the Turkish sultan, as hostages)라고 말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의혹을 갖고 아이를 살해하거나 노예로써노예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간니발의 누이 라한(Lahan)은 같은 시기에 신병을 구속받았으나, 여행 도중에 죽었다.
 
[[170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러시아 [[대사]](ambassador) [[사바 라크진스키]](Savva Raguzinsky)의 대리인에 의해 간니발을 데리고 가게 되었다. 그의 상관 [[표트르 안드레이비치 톨스토이]](Pyotr Andreyevich Tolstoy, 작가 [[레프 톨스토이]]의 증조부)에게 맡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