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원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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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으로는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이 가장 크다. 해안선은 그리 길지 않으나 만과 섬이 발달해 있다. 전체 군 면적의 73% 가량이 숲이며 이 가운데 70% 이상이 침엽수림이다. 기후는 해양성으로 온화한 편이다.
 
== 산업역사 ==
옛날에는 [[옥저]]·[[고구려]]의 영역이었다. [[신라]]의 [[진흥왕]]은 이 지역을 차지한 후 [[마운령비]]를 세웠다. 그 다음에는 [[발해]]·[[여진]]에 속했다. [[고려]]가 차지한 후, 1258년에 [[원나라]]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이후 약 100년에 걸쳐서 [[쌍성총관부]]에 속했다. 시리로 불리던 이곳은 1356년에 고려에 의해서 단천에 편입되었다.
리원군의 주산업은 기계공업이며, 리원광산을 통한 광업과 평양 지대에서의 농업도 이루어진다. 주요 작물은 쌀과 콩, 옥수수이다.
 
[[조선]]의 [[세종]]대에 마운령 이남이 분할되어 리성현이 설치되었다. 18세기 말의 [[정조]] 대에 왕의 이름과 유사한 소리가 되는 것을 피해 리원현으로 고쳐졌다.
== 교통 ==
철도는 [[평라선]], [[철산선]], [[차호선]]이 지난다.
 
1895년에는 리원군이 되었고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서 현재의 군의 범위가 거의 정해졌다.
== 역사 ==
* [[1941년]] [[4월 1일]] 남면 일부를 차호읍으로 승격하였다.<ref>조선총독부령 제85호 ([[1941년]] [[3월 26일]])</ref>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 95%;"
| colspan=2 | 조선총독부령 제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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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면 유성리, 유진리, 하차호리, 상차호리, 룡항리, 포항리, 포진리, 창흥리 || 차호읍 일원
|}
해방 무렵에는 3면 78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북한 성립 후 1952년 12월에 행해진 행정 구역의 재편으로 22리로 구성되는 현재의 리원군이 되었다. 1952년에 오일리를 오일로동자구로 개편하였으나 1954년에 오일로동자구를 폐지하고 라흥로동자구를 내왔다.
 
== 역사산업 ==
리원군의 주산업은 기계 공업으로 연간 공업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철, 황, 활석, 석회석, 흑연, 규암이 발견된고 리원광산에서는 활석이 생산된다. 평야와 강을 따라 농업도 행해지고 주요 작물은 쌀과 콩, 옥수수이다.
 
== 교통 ==
철도는 [[평라선]], [[철산선]], [[차호선]]이 지난다.
 
== 행정 구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