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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2차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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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는흥화진을 지켰으나 거란이 항복을 권했을때 싸웠다 그때 강조가 죽었고 항복하라는 편지로 위장해서
 
보냈으나"우리는 왕의 명령으로 싸우지 강조의 명령으로 싸운게 아니다"하며 지켰다.
양규는 고려 목종(고려 제 7대왕)대에 이름을 드러내었다. 한때 양규가 도적이라고 할 때, 양규는 가난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물건들을 훔쳐갔다. 이에 안패는 양규를 잡아 죽이려 하지만 서희와 강감찬에게 알려져 실패했다.양규는 목종때 천추태후가 무예가 뛰어난 사람들을 뽑는다는 곳에 가서 1등을 했다. 김숙홍도 따라서 양규보다 조금 낮은 벼슬을 했다. 양규는 거란의 2차 침입때 적군에게 큰 피해를 준 것으로 유명하나 2차 전쟁이 끝나갈때 비극적이게도 적군의 화살을 수십대 맞고 죽었다. 하지만, 거란도 지칠대로 지치고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돌아갔다.
그후 700명을 데리고 곽주로가 강조의 부하를 구했으며6000명을 공격해 탈환하고7000명을 데리고 통주로 갔다
이렇게 영웅이었던 양규는 비참한 생을 맞는다.
개경이 함락되고 나주까지 피란가자 거란군이 철병하게 되자 구주방면에서 돌아가는 거란군을 지키고 있다가김숙흥과함께 2,000여명을 베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2,000여명을 탈환하였고, 석령에 이르러 2,500여명을 베고 포로가 된 1,000여명을 탈환하였다. 여리참에서 싸워 1,000여명을 베고 포로가 된 1,000여명을 탈환하였으며, 다시 거란의 선봉과 애전에서 싸워 1,000여명을 베었다.
그러나 거란군이 몰려오자 군사가다해 김숙흥과 함께수십대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그러나 그의 공격으로 거란은 완전히 철군 했으며
그의 아들과 부인은 곡식과 벼슬을 얻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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