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교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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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과정==
 
공손찬은 3만의 군사로 방진을 치고 기병 1만을 좌우에 배치하여 주력으로 삼았다. 한편 원소 역시 진형을 갖추고 [[국의]](麴義)와 정병 8백명을 선봉으로 삼았으며 1천의 노병을 그 뒤에 대기시켰는데. 원소의 군세가 적은 것을 본 공손찬은 이를 깔보고 기병을 풀어 공격했으나 기병대의 전술에 능숙했던 국의가 군사들을 방패 아래 엎드려 있게 하다가 공손찬의 기병대가 사정거리에 도달하자 일제히 궁노를 발사하게 해 공손찬의 기병대가 크게 무너졌고 공손찬이 임명한 기주자사(冀州刺史) [[엄강]](嚴綱)이 전사했다. 기병대가 패퇴하자 공손찬은 군세를 철수시켰으나 원소가 이를 뒤쫓자 계교에서 다시 군사를 거두어 싸웠다. 하지만 여기서 공손찬은 대패하였고 공손찬이 주둔하고 있던 본영이 점령되자 남은 무리들도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한편 후방에 있던 공손찬이 완전히 격파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방심하여 안장에서 내려 말을 쉬게 하며 단지 수십명 남짓한 보병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달아나던 공손찬의 2천 기병대에게 포위당한다. 별가(別駕)) [[전풍]](田豊)은 원소를 끼고 도망쳐 원소를 담장 틈속에 숨기려 했으나, 원소는 분개해 쓰고 있던 모자를 집어던지며 '''"장부는 마땅히 앞에서 싸우다 죽어야 하거늘, 어찌 담장 사이로 도망가겠는가!" 라며'''라는 기골에 찬 대사를말을 토해내며 앞장서 싸우자 모두가 분발하여 싸웠다. 지휘하는 자가 원소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적들은 그 기세에 눌려 차츰 밀려나다가 마침 국의가 와서 원소를 돕자 마침내 궤멸당했다.
 
[[분류:삼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