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베우스 왕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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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로빙거 왕조''' (Merovingian dynasty) 또는 '''메로빙 왕조'''(Merovings)는 5세기 중반부터 8세기 중반까지 [[갈리아]]의 영토를 이어받아 대부분의 [[프랑스]]와 [[벨기에]] 또한, [[독일]]과 [[스위스]] 일부분을 로마인들의 점령직후 5세기부터 8세기까지 통치한 [[프랑크족]]을 다스리던 왕조이며 왕족이다. 그들은 시캉브르(Sicambres)라는 곳의곳에 살았던 [[갈리아|골]]족과 [[고대 그리스]] 아르카디아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프랑크 왕국|왕국]]은 자주 내부 권력 다툼이 일어나고 분열과 통합을 반복했는데 8세기에 이르러 왕조의 군주들은 유명무실해지고 [[궁재]]로 대표되는 궁정의 신하의 권력이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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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메로빙거"라는 이름은 [[메로베치]]에서 유래한다. 그는메로베치는 [[힐데리히 1세]]의 아버지이며, 힐데리히의 아들 [[클로비스 1세]]는 [[486년]]에 수많은 부족들을 정복하여 최초로 [[갈리아]]를 통일하고 단일한 프랑크족의 국가를 세우게 된다. 그는 또한 프랑크족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는데 이는 이후 유럽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클로비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영토 뿐만 아니라 [[서고트족]]의 남부 프랑스 영토([[부르고뉴]], [[프로방스]])를 병합하여 갈리아 전체를 통합하였으며 작은 프랑크 소왕국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는 [[파리 시|파리]]에 중심을 두고 [[수아송]], [[랭스]], [[메츠]], [[오를레앙]]에 각각 주요 거점을 두었다. [[511년]] 클로비스가 죽었을 때 메로빙거 왕국은 네 명의 아들에 의해 각 거점별로 나누어 지게 되었다.
 
[[클로타르 1세]]는 다른 형제들이 죽자 모든 왕국을 계승 받지만 잠시뿐이고잠시뿐이었고 그의 사후 4명의 아들들에 의해 왕국은 쪼개진다. 그 이후 계속 왕국은 분열된 상태로 있다가 통합을 반복하였고 크게 [[아우스트라시아]], [[네우스트리아]], [[부르고뉴]] 의 왕국으로 쪼개어진다.
 
[[679년]] [[토이데리히 3세]]는 다시 한번 모든 프랑크의 소왕국을 통일하였다. 이때부터 잠시 내전 기간을 제외하고 프랑크는 1개의 통일 왕조로 간주되지만 메로빙거 국왕의 실권은 없어지게 되고 각 왕국은 일종의 궁정 대신인 [[궁재|궁재]](maior domus)]]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궁재 중에서도 강력한 가문이 등장했는데, 바로 [[피핀 1세]]의 가문이었다. 이후 어린 아들을 남기고 요절하는 왕들의 출현으로 왕실의 실권은 낮아졌고
[[680년]]경 메로빙거 왕실과 인척관계를 형성한 [[카롤링거 왕조]]의 [[피핀 2세]]가 실권을 장악했고, [[714년]]에는 그의 사후 왕실 지지파가 피핀의 세력을 누르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카롤링거 왕가]] 출신의 [[카를 마르텔]]이 실권을 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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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메로빙거 왕조}}
 
[[분류:메로빙거 왕조]]
[[분류:프랑크 왕국]]
[[분류:유럽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