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호 (1834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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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호'''(閔台鎬, [[1834년]]~[[1884년]] [[10월 18일]])는 [[조선]] 시대의 [[문신, 서예가이다. [[민영익(관료)|문신]]의 친아버지이며, [[조선 고종서예가]]비 [[명성황후]]의 친척 오라버니이다이다. 친일 개화당과 다른 동도서기적[[동도서기]]적 개화정책을 추진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 때 [[경우궁]]에서 [[김옥균]] 일파에게 살해되었다. [[민유중]]의 아들 [[민진원]]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홍섭이고 아버지는 치삼이며 생부는 치오이다. [[민치구]]의 아들 [[민태호]](閔泰鎬)와 동명이인이다. 자는 경평(景平), 호는 표정(杓庭), 시호는 충문공(忠文公), 본관은 [[여흥]](麗興).
 
== 생애 ==
[[동도서기]]파동도서기파 유학자 [[유신환]](兪莘煥)의 제자로 [[1870년]] [[과거 (조선)|문과 별시]](別試)에 병과(丙科)로 합격하였다. [[1875년]] [[경기도]]감사를 지냈고, [[1878년]] 딸이 [[조선 순종|순종]]의 비인 [[세자빈|순명효황후]]으로 간택되었다.
[[1882년]] 강화부유수로[[강화[[유수부|부유수]]로 부임했다. [[1883년]] 통리군국사무아무독판, 그 뒤 총융사, 어영대장, 무위도통사(武衛都統使), [[대제학]] 등을 지냈다. 민씨 척족의 중심인물로서 [[1882년]] [[임오군란]] 때, 강화유수(江華留守)로 있었는데 [[민태호]]의 집도 습격을 받았다.
 
그뒤 종일품으로 승진하여 [[의정부]][[좌찬성]]을 지냈고 [[1883년]] [[7월]] 전환국 관리사무(典圜局管理事務), [[9월]] 군국사무독판을 거쳐 다시 좌찬성이 되었다. 왕가의 외척으로 사대당(事大黨)의 대표적 인물로서 활약하였으며 [[1884년]] [[갑신정변]] 때 [[윤태준]](尹泰駿), 전영사(前營使) [[한규직]](韓圭稷),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조영하]](趙寧夏), 해방총관(海防總管) [[민영목]](閔泳穆), [[내시]] [[유재현]](柳載賢) 등과 함께 입궐하던 중 [[경우궁]] 대청 앞에서 [[김옥균]] 일파가 보낸 군사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후 충문공(忠文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10월 24일]] [[증직|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보낸 승지가 직접 치제하였으며 3년치의 녹봉이 내려졌다. [[1907년]] [[대한제국 순종|순종]] 즉위후 [[이윤용]]의 상소로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이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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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에 능하여 전서(篆書),예서(隸書),행서(行書),초서(草書) 등 다양한 서체를 모두 잘 썼다 한다.
 
== 가족 관계 ==
* 증조부 : [[민백상]] (閔百祥)
* 할아버지 : 민홍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