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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은 선조의 사망과 [[광해군]]의 등극으로 집권당이 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몰락하여 소수파가 되었고, 이후 동인의 전통은 인조 반정 때 서인을 지지하여 살아남은 남인이 대부분 잇게 되었다.
 
남인은 [[조선 숙종]] 시대에 예송에 참여하여 서인을 실각시켰으나 서인 배척 문제로 청남(淸南)·탁남(濁南)으로 분열되었다. 그 뒤 [[인현왕후]] 폐위, [[장희빈]] 중전 옹립, [[인현왕후]] 복위 등으로 서인과 남인 간 대결이 주를 이루는 정국을 주도한 바 있고, [[조선 영조|영조]]와 [[조선 정조|정조]] 대에는 이들의 [[탕평책]]에 따라 등용되었다. 이 시기 남인의 영수는 [[채제공]]이었다.

그러나 [[1800년]] 6월 정조 사망 이후 세도 정치 아래서 중앙 정계에서 밀려났으며, 재야에 머물면서 [[17세기]] 이후 [[실학파]] 형성과 [[천주교]] 도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승훈, 안정복, 정약용, 권철신, 이가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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