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우 (영화인): 두 판 사이의 차이

1,819 바이트 추가됨 ,  12년 전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출처 필요}}
'''이봉우'''(李鳳宇, [[1960년]] ~ )는 [[일본]] [[교토 시]] 출신의 [[재일한국인]] 2세 [[시네콰논]](Cinequanon) 대표겸 영화제작자이다.
 
1960년 일본 교토에서 출생한 제일 한국인(북한 국적에서 변경). 북한의 지원을 받는 [[조선대학교 (일본)|조선대학교]] 외국어 학부 졸업.
[[도쿄]] [[조선대학교 (일본)|조선대학교]] 외국어학부를 졸업후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유학을 했고, 조선국적에서 [[대한민국]] 국적으로 변경취득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재일동포]] 영화제작자이다. [[한국영화]] [[서편제 (영화)|서편제]], [[쉬리 (영화)|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스캔들 (영화)|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등을 일본에 수입배급하여 본격적으로 일본에서의 [[한류 (문화)|한류]] 열풍의 불을 지핀 장본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부친(1987년 사망)은 조선노동당에 몸담았으며 교토에서 조총련 교토 미나미지부 부위원장을 맡고 74년에 탈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영화「박치기! LOVE&PEACE」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자신의 부친이 실제 체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모친 또한 조총련 스파이 양성소로 지적받고 있는 간부학교인 (조총련)중앙학원에서 집체교육을 받은 간부이다. [[조선대학교 (일본)|조선대학교]] 졸업후, 1983년 조선신보사에 입사, 조선노동당원과 동일한 자격을 취득했다. 1984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 2년간 유학하였다. 귀국후 도쿠마재팬에서 영화프로듀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89년 배급회사 [[시네콰논]](Cinequanon)을 설립했다.
 
1992년 북한당국 감독하에「한일영화수출입사」와 일본-북한 합작영화「버드」(림창본 감독)를 제작하여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개최된「제3회 평양영화제」에서「日北합작 화제작」으로 상영되었으며, 당시 이봉우는 요모타 이누히코를 비롯한 영화평론가들과 동행 방북하였다.
 
1992년 첫 프로듀서 작품인「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로 50개 이상의 영화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밖에도「노래자랑」「박치기!」등을 제작하였다.
 
배급작품은 북한영화「우리집 문제」시리즈 3부작과 한국영화 [[서편제 (영화)|서편제]], [[쉬리 (영화)|쉬리]], [[스캔들 (영화)|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송환 등이 있으며 그 밖에 구미지역 작품을 포함하여 총 130개의 작품이 있다.
 
 
(이상은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이봉우(李鳳宇) 관련 내용 번역)<ref>[http://ja.wikipedia.org/wiki/%E6%9D%8E%E9%B3%B3%E5%AE%87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이봉우(李鳳宇) 관련 내용 번역] </ref>
 
 
==「친북파•대일문화공작」에 대하여 ==
아래의 내용은 ‘신조(新潮)45’ 2010년 3월호 「탈북영화 “크로싱”은 왜 개봉이 안되었는가」에서 발췌한 것이다.<ref>위키피디아 일본어판 이봉우(李鳳宇) 관련 내용 번역</ref>
 
이봉우는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간부로부터 ‘한류(韓流)’에 대항하여 일본 사회내 북한류(朝流)를 일으킬 수는 없는가? 라는 상담을 받고 “일본 사회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단계를 밟으면 할 수 있다.”라고 답하였다(출처: 코리아 NGO 센터•뉴스레터 №1 「한류로부터 새로운 동북아시아의 창출을」, 2004년 발행).
이 두 작품에서 주제가로 등장한 곡이 《임진하(河)》(원제《임진강》)이다.《임진하》는 「조선민요」가 아니다. 원래 북한 국가(國歌)를 만든 박세영 작사•고종한 작곡으로 1957년에 북한에서 발표한 북한 체제 선전노래였다.「박치기」에서의 「임진하」의 가사는 북한이 한국을 침략한 사실을 은폐하여 사실을 모르는 관객을 현혹시켰다.
 
이봉우는 2006년,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 일기」(2003년, 김동원 감독/원제 「송환」)를 배급 공개했다. 이 영화는 북한으로부터 조국 통일을 위하여 한국에 입국했는데 스파이로 취급되어 체포된 ‘비전향 장기수’들과 그들을 북한으로 송환시키는 운동을 담은 ‘친북’ 영화이지만, 이봉우는 이 영화에서 일본인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삭제하여 공개했다. 원본에는 북한의 신광수(일본인 납치가하라 타다아키 압치실행범)가 등장하고 있으나 그러한 중요범죄자가 마치 「피해자」「영웅」처럼 북한으로 송환되는 장면이 나오지만있었음에도 일본 내 공개한 필름에서는 말끔하게 삭제하였었다.
 
“이봉우는 공작원이 아니다.”라며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자주 꺼내는 이야기 중에 “그는 김일성 배지(badge)를 가지고 있었으나 절대로 달지 않았다” “한국 국적을 선택하였다”라고 말하곤 한다. 앞서 기술한 평양에서의 영화제에서도 “죽어도 배지는 달지 않는다” “북한은 어딘가 이상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이 자국에 유리한 인물에게는 굳이 배지를 달게하지 않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고, 한국 국적을 선택한 김일성 부자 숭배자나 친북자 등은 수없이 많다(그 편이 일본에서 활동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봉우가 대표로 있는 [[시네콰논]]은 수많은 금전 문제와 영화「크로싱」개봉방해 등의 이유로 2010년 1월 도쿄 지방재판소에 민사 재생 수속을 신청하였는데, 이는 한국으로 따지면 사실상 도산한 상태에 해당한다.
 
 
(이상은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이봉우(李鳳宇) 관련 내용 번역)<ref>[http://ja.wikipedia.org/wiki/%E6%9D%8E%E9%B3%B3%E5%AE%87 위키피디아 일본어판 이봉우(李鳳宇) 관련 내용 번역] </ref>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