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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권57에 자신의 전이 있다.
 
난세를 피해 강동으로 가, 광릉 사람 위정과[[위정]]과 함께 낮에는 오이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밤에는 공부했다. 살던 곳이 군의 호족 회계 사람 초정강(焦征羌, 《오록》에 따르면, 이름은 초교(焦矯)며, 옛날 정강령이었다)의 땅으로, 그를 두려워하여 위정과 같이 오이를 헌상하러 방문했다. 초정강은 보즐 일행을 심히 멸시했으므로 위정은 심히 치욕을 느끼고 분노했으나, 보즐은 초정강의 멸시를 묵묵히 받아내었다. 위정이 보즐에게 분노하자, 보즐은 대답하여 애시당초 우리가 빈천하니 빈천한 대로 대우받았을 뿐인데 무엇을 부끄럽게 여기냐 했다.
 
[[손권]]이 토로장군이 되자 불러 주기로 임명했다. 해가 지나자 질병으로 관직을 면하고 [[제갈근]], [[엄준]]과 함께 오중에서 유학하며 명성을 얻었다.<ref name="wo">위요 찬, 《오서》</ref> 손권은 보즐에게 해염장을 제수하고, 다시 불러 거기장군 동조연으로 삼았다. 손권이 서주목이 되자 보즐로 치중종사를 삼고, 무재로 천거했다.<ref name="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