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존슨 (문학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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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는 각자 나름>(1598)이 대표하는 '기질희극'은 인간의 4체액(血液·粘液·黃膽汁·黑膽汁)의 배합으로 결정되는 기질(예컨대 점액질·담즙질 등)에서 생겨나는 각양각색의 성격을 유형화하고 그것들의 충돌이나 상호작용을 희화화한 것이나, 셰익스피어 희극과는 그 취향을 달리하는 신기함으로 당시 크게 인기를 획득했다. 그 후 <신시아의 향연>이나 <엉터리시인>(1601)으로 데커와 싸움이 끊이지 않고 극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서도 반감을 사게 되어, 한때 비극 <세자누스>(1603)로 옮겼으나 끝내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한편, [[제임스 1세의1세]]의 총애를 받아 <검은 가면>(1604) 이후 20여년 동안 궁정 가면극의 제1인자로서 군림했으나 그의 본령은 신랄한 비판정신에 바탕을 둔 풍자희극 분야에 있으며<ref>엇갈리는 줄거리의 흥미를 가진 코믹적 요소도 있다.</ref>, <볼폰(여우)>(1606), <연금술사>, <에피신(침묵의 여자)>(1609) 등의 걸작이 크게 성공하였다. 후기의 대표작 <바톨로뮤의 시장>(1614)은 당시 런던에서 열렸던 정기 시장(定期市場)을 무대로 펼쳐지는 시정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린 파노라마풍의 대작으로 호평을 받았으나 그 이후로 가면극 이외는 부진하여 [[찰스 1세]] 시대의 작품도 실패작이 많다. 그의 입장은 [[셰익스피어]], [[말로]] 등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낭만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당시의 주류에 대하여 삼일치의 법칙을 준수하는 고전주의로서 고립되어 있었으나 왕정복고기(王政復古期)의 풍속희극을 거쳐 [[와일드]], [[서머싯 몸]], [[카워드]] 등 현대 풍속희극과 결부되는 영국 정통희극의 전통을 이끈 공적은 크다고 하겠다.
 
비평가로서는 해박한 학식을 가지고 고전적 전통에 입각하여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낭만적 작풍(作風)에 대립한 일파를 이루었으며 영국 초기 비평문학의 중요한 존재이다. 셰익스피어는 한 줄도 지우지 않은 채 썼다고 칭찬을 받았으나 한 천 줄쯤 지워버렸으면 좋았겠다는 비평은 특히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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