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효명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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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어린 효명제(孝明帝)을 대신해 섭정한 [[영태후]](靈太后)는 정치를 하면서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사탑을 건립하여 재정을 어지럽혀, 국내에 도적이 봉기하고, 그동안 누적된 한화 정책에 대한 [[선비족]]의 불만은 [[523년]] [[6진의 난을난]]을 초래하여 [[북위 (북조)|북위]]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6진은 원래 [[북위 (북조)|북위]]의 수도 평성을 지키던 6곳의 군사기지로 이곳엔 왕실 계통의 유력자들이 머물면서 국경을 지켰기에 대우가 좋았다. 하지만 급진적인 한화 정책과 수도의 이전으로 인해 대우가 소홀해 지면서 그 불만이 누적되어 6진의 난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영태후는효명제는 효명제를영태후에게 독살하고독살당하고 후계자를 세우지만 6진의 난의 진압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서성 삭현 지방의 흉노족 [[이주영 (북위) |이주영]](爾朱榮)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후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이하승상 이하의 대신 1,000명을 처형했다.(처형하는 [[하음의 변(河陰의]]을 變)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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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북위]]
 
[[분류:510년 태어남]]
[[분류:528년 죽음]]
[[분류:독살된 사람]]
 
[[en:Emperor Xiaoming of Northern W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