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탄젤로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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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교황]]이 이 영묘 단지를 성곽으로 고쳤고 [[중세]] 동안 내내 교황의 전용 피난처이자 요새, 그리고 교도소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3세]]는 위험에 처할 때 피신할 수 있게끔 산탄젤로 성과 [[성 베드로 대성당]]을 연결하는 요새화된 비밀통로를 만들었고 [[1527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로마를 침공했을 때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실제로 이 비밀통로를 통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산탄젤로 성까지 도피하였다. 이 사실을 안 황제는 산탄젤로 성을 포위하고 공성전을 벌였다. 이때 화가 [[벤베누토 첼리니]]가 성벽에서 적군을 쏘아죽였다는 일화도 내려온다. [[교황 레오 10세]]는 성 안에 성모 성당을 지었고 [[교황 바오로 3세]]는 성 안을 화려한 교황의 거처로 꾸며 장차 교황을 위협하는 전투가 벌어졌을 때의 임시 피난처로 만들었다. 또한, 로마 교황청의 중요한 교도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이곳 감옥에 수용되었던 역사적 인물로는 [[창부정치]]의 주도자인 [[마로치아]]와 [[르네상스]] 시기의 금은 세공가 첼리니와 혁명적 사상가 콜라 디 리엔초, [[조르다노 부르노]] 등이 있었다.
 
[[1901년]]부터는 사용이 중단되었고 현재는 [[이탈리아]]의 국립 군사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각종 무기가 진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