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숙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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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손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무용이 뛰어나다는 이유 이외에는 없는데, 실제로 사육신사건에서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무인보다 문신들이 더 많이 연루된 것을 보면 미리 왕위찬탈을 계획하고 있었고, 왕위 찬탈을 위해 미리 단종에 충성하는 무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금성대군사건에서 연루되어 사망한 인물들중에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중양경직 무관들이 많이 연루되었다.</ref>
 
이듬해 인 1456년(세조2년) 단종을 복위시켜려는 [[사육신]]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때 사육신의 한명인 [[이개]]에 연루되어 장자 맹한, 조카 계한과 함께 먼 지방에 유리안치 되었다.<ref>[http://sillok.history.go.kr/viewer/viewtype1.jsp?id=kga_10206026_004&grp=&aid=&sid=2062681&pos=3 <세조실록> 2년(1456) 6월 26일 4번째기사]</ref> 1458년(세조 4년) 2월에 같이 안치되었던 장자 맹한과 조카 계한이 원함에 따라서계한의 안치된 곳을 옮겨주었을 때의 기록에는 빠졌다. 이 기록으로 보아 이미 이전에 유리안치 된 후에 국문의 후유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ref>비록 유배중이지만 무관의 최고위급 인물이 특별한 이유가 없이 실록 기록에서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면 사망한것으로 보인다.</ref> 이후 1476년(성종 7년)에 이르러 사면 복권되었다.
 
==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