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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함 또는 이감'''(李椷, 1677년 ∼ 1730년)은 조선후기의 관원으로 [[이인좌의 난]](李麟佐亂) 후에 다시 궁궐 침입과침입하여 폭파를방화를 모이한 [[최필웅]](崔必雄)의 난으로 피화(被禍)된 종친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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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증 이조참판 [[오수량]](吳遂良)의 딸로 해주오씨(海州吳氏)이다.
의금부 도사 인한의 6남으로 정사(丁巳) [[1677년]](숙종 3) 탄생하였다. 호동(壺洞) 이서방(李書房)이라고 불리웠으며, [[1728년]](영조 4) [[12월 11일]] 준원전 참봉(濬源殿 參奉)을 역임하였다.
[[이인좌의 난]](李麟佐亂, 戊申亂, 무신사태) 후에 [[1730년]](영조 6) 궁궐 침입과침입하여 폭파를방화를 모이한 [[최필웅]](崔必雄)의 난으로 즉 [[정수명]](鄭守命), 최필웅(崔必雄) 등과 종실(宗室) [[학성군]](鶴城君)을 추대(推戴)하여 모반하였다는 무고에 연루되어 가진 고문을 받고, 이해 [[6월 16일]] 향년 54세로 피화(被禍)되었다.
이 사건으로 아들 세열(世說)은 이해 [[5월 11일]] 국문 도중 고문을 못 이기고 별세하였고, 나머지 가족들은 연좌되어 처자(妻子, 해주오씨와 세윤(世尹))는 종이 되고, 가산(家産)은 적몰(籍沒)되었다.
[[1864년]](고종 1) [[7월 18일]] 신원되었고, [[1872년]](고종 9) 12월 초2일 후사(後嗣)가 없어 [[조선 고종|고종]]의 명으로 [[조선 태종|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양녕대군 이제]](讓寧大君 李禔)의 후손 이상하(李相夏)의 아들 이석유(李奭裕)를 후사(後嗣)로 세웠으나 파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