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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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 전자메일로 구애메세지를 전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 인기를 모은 게 동호회활동이다. 지역, 취미, 이념, 관심사 등에 따라 많은 동호회활동이 펼쳐졌다.
문학, 독서, 바둑(온라인 바둑이 당시 유행시작), 군사메니아, 낚시, 바통모 등이 기억에 남는다.
자유게시판에서 친목을 도모하고 전문게시판에 자기의 글을 선보이면서 리플을 통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많은 동회인들이 채팅창에 모여 날밤을 새면서 재미는재밌는 대화를 이어나갔고이어나가며 친목을 강화했다.
 
이렇게 온라인을 통해 친목을 다진 이들이 얼굴을 맞댈 기회가 가끔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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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통신은 한국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온라인 바둑서비스를 통해 길거리 기원들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당시의 풍속도이다.
채팅이나 토론에 빠져 집에 전화가 걸리지 않은 집들이 많았다. 모뎀을 쓰면 집통화가 통화중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전화료 3-4대는 기본이었고 10만원을 훨씬 초과한 집에서는 부모가 모뎀에 연결된 전화선을 짜르는 집들도 많았다.
이런 집에서는 결국 학생방에 모뎀연결 전용 전화를 따로 구비한 집들도 많았다.
하루 3-4시간 이상 모뎀을 쓰면 집통화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호출을 할 수 있는 삐삐가 등장하면서 통신마니아가 급한 전화에 대응할 방안이 열린 것은 다행이랄까.
 
PC통신에서 꼭 집어봐야할 것이 한국전자통신의 개막의미와 전자토론문화이다.
다양한 전자정보시대가 열었다.
신문뉴스가 온라인 서비스되는 시대를 맞았다. 어떤 뉴스가 이용자들의 관심을 끄는지 신문사들은 참고하며 편집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증권, 금융, 환율, 금리, 물가, 기업정보, 무역, 세무, 부동산, 유통정보, 문화 레저, 날씨, 농업정보, 의약 건강 등 다양한 정보를 전자통신으로 얻을 수 있었다.
 
=== 사설 B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