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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년에 사망하였을 때 저축한 것이 없어 인종에게 30년간 근시직(近侍職)에 있으면서 저축한 것이 없다하여 칭송을 받았다.
이로인해 국비로 장례를 치루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정항이 죽을 때 아들 [[정서]](鄭敍). 정인(鄭仁)형제에게 "곧 서경에 난민이 발생할 것이니 만일 그들이 개경에 오거든 모든 재산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라고 유언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정서. 정인형제에게는 남겨줄 유산이 없었다고 한다.)
 
같은 해에 사망하기 전 과거가 시행되었는데 지공거(知貢擧) [[최자성]](崔滋盛)이 시제를 잘못내어 간관들이 이를 무효화 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정항의 사위 [[김이영]](金貽永)이 합격하였기 때문에 환관에게 간청하여 취소시키지 못하게 하는 일면을 보였다.
 
[[분류:고려]] [[분류:고려의 문신]] [[분류:동래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