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진궁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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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진은 동생 금진과 법흥왕을 모시며 그의 총애를 받았고, 대원신통의 권세 또한 높아졌다. 옥진이 왕자 [[비대전군]](比臺殿君)까지 낳자 법흥왕은 비대를 자신의 후계로 삼고자 했으나, 장녀인 [[지소태후|지소]](只召)의 반대에 부딪혔고, 옥진의 아버지 위화랑 또한 지소의 편을 들자 자신의 생각을 거두어들였다. 법흥왕이 죽은 후에 진흥왕이 즉위하고 지소태후가 섭정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진골정통의 세가 높아졌다. 지소는 옥진 자매를 싫어하였고, 금진은 궁을 나가게 되었다.
이후, [[사도왕후]]가 어머니에게서 대원신통의 종의 자리를 이어받아, 지소태후와 대립하였고, 미실 또한 색공으로서 진흥왕을 모시게 되었다섬겼다.
 
마침내, 미실은 진흥왕의 총애에 힘입어 궁주, [[원화]](源花), 전주(殿主) 등을 거쳤고, 마침내 진흥왕이 조정에서 업무를 볼 때 옆에서 그것의 옳고 그름을 참의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당대의 상황을 화랑세기는 「조야의 권세가 다시 옥진궁으로 돌아갔고 대원신통이 다시 성하게 일어났다」 <ref>朝野權敀(歸)玉珍宮 大元神統復赫然而起</ref> 라고 적고 있다.
 
== 옥진궁주의 칠색조 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