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용 (187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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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하자 일본을 떠나 유럽 각지를 유람하고 2년 뒤에 돌아와 일본 [[지바 현]]에서 한거하였으며, 1898년 [[안경수]]의 쿠데타 사건에 연루되어 망명 상태로 귀국하지 못하다가 [[1907년]] 돌아왔다.
 
[[1907년]] [[8월 14일]] 영선군(永宣君)에 봉해져 [[종일품]] [[숭정대부]]의 자품을 받았으며받고 대한제국 육군 참장(參將)이 되었으며, [[10월12월]] 훈1등이화 태극장을 받았다.<ref>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대수장(1李花大綏章)》(오영섭 저,[[1908년]] 한영희[[9월]] 발행,서성 2007.4, 경인문화사대수장(瑞星大綬章) 334쪽.차례로 </ref>받았다.
 
[[1909년]]부터 [[1910년]]까지 친일 단체인 신궁봉경회 총재를 맡아, 한국의 건국 시조인 [[단군]]을 일본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아마테라스]]에 부속되는 구도로 신궁에 함께 배치하여 한국 역사를 일본 역사에 종속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한 바 있다. [[1910년]] [[8월 5일]] 종친으로 가장 높은 자품인 상보국숭록대부(上輔國崇祿大夫)로 가자되고가자(加資)되었고, 마지막으로 [[8월 27일]] [[대한제국]] 육군최상위 참장이훈장인 되었다.금척대수장(金尺大綏章)을 받았다.
 
[[일본]]으로부터는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훈1등 욱일장을 수여받았다.<ref>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334쪽.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