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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수군의 기동 ===
이때 어란포의 일본 수군은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도도 다카토라]], [[와키사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가 지휘하는 330여 척의 전선(뒤에 200척이 있었음)을전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명량 해전에 참가한 부대는 구루시마와 도도가 이끄는 133척의 함대였다. 일본 수군은 [[목포]] 쪽으로 흐르는 북서류를 타고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전라도]]로 서진할 계획이었다. 명량해협은 [[진도 (진도군)|진도]]와 [[화원 반도]] 사이에 있는 좁은 수로로 [[조류 (파도)|조류]]는 국내의 수로 중에서 가장 빠른 곳이다. 빠른 수로를 이용하여 얼마 안 되는잔존하는 조선 수군을 압박해서 물리친격파한 다음 전라도로 진격하려는 것이었다.
 
일본 수군은 [[1592년]]의 전훈을 참조하여 내륙으로 깊숙이 진격하기 전에 반드시 [[서해]]의 해상권과 전라도를 장악하고자 하였다. 이순신이 복귀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13척의 전선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무력하리라는 것이 이무렵 일본 수군의 분위기였다판단이었다. 이순신과 전투에서 패배이미 1호를패배를 기록한경험한 도도 다카토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칠천량 전투의 승리가 일본 수군의 사기를 드높여준 탓이었다. 우세한 전력을 앞세워 이번 기회에 가능하면 이순신도 잡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일본 전쟁은수군은 완전히압도적인 승리로전력으로 끝낼이순신의 수군을 있을격파할 것이라것을 믿었다결의했다.
 
한편, 이순신도 일본 수군의 기동 보고를 받고 장병들에게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라고 말하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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