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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거란]], 곧 [[요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요가 [[발해]]를 멸망시켰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고려가 요에 대해 적대 정책을 유지하자 마침내 요나라도 고려를 공격할 준비를 하여, 고려와 요나라 사이에 있는 여진 부락을 정벌하고 발해 유민이 세운 [[정안국]]을 멸망시킨다.
 
[[993년]]([[고려 성종]] 12년), [[요 성종]]은 장수 [[소손녕]]과 80만 대군을 보내 고려를 공격하였다. 이에 고려 성종은 [[박양유]](朴良柔), [[서희]], [[최량]](崔亮) 등을 보내어 싸우게 하였으나 패배하여 봉산군(오늘날 [[청천강]] 이북 지역)을 빼앗기고 말았다. 다시 고려 성종은 [[이몽전]](李蒙戩)을 청화사(請和使)로 보내 화의를 표명하였으나, 적장 소손녕은[[소손녕]]은 항복만을 요구하였다. 이몽전이[[이몽전]]이 침략의 이유를 묻자 “너희 나라가 백성을 돌보지 않으므로 천벌을 주러 온 것이다”라는 이치에 닿지 않는 말만 할 뿐이었다.
 
이몽전이[[이몽전]]이 돌아와 보고하니 고려 조정은 혼란에 빠졌고, 어떤 신하는 투항을 주장했고, 다른 신하는 땅을 떼어주자는 할지론을 주장했다. 이때 서희가[[서희]]가 나서서 투항론과 할지론이 모두 옳지 않음을 주장했다. 그때 서희는[[서희]]는 요나라의 침공 이유가 소손녕이[[소손녕]]이 밝힌 바와는 달리 고려와의 강화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민관(民官) [[이지백]](李知白)도 서희에게[[서희]]에게 동조하였다.
 
한편 소손녕은[[소손녕]]은 회답이 늦자 청천강 이남의 안융진을 공격하다가 중랑장 [[대도수]](大道秀)와 낭장 [[유방 (고려)|유방]](庾方)에게 패하였고, 그에 남진을 멈춘 소손녕은[[소손녕]]은 고려에 항복을 독촉했다. 합문사인(閤門舍人) [[장영]](張瑩)을 화통사로 보냈으나, 이번에도 소손녕은[[소손녕]]은 회담하기를 거부하며 다른 사신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고려 조정에서는 서희를[[서희]]를 보내어 소손녕과[[소손녕]]과 담판케 하였다.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의 옛땅은 요나라의 소유라는 소손녕의[[소손녕]]의 주장을 서희는[[서희]]는 탁월한 화술로 반박하여, 고려는 고구려의 옛땅이 터전이므로 국명도 고려임을 설득하였다. 담판 결과 소손녕은[[소손녕]]은 고려와 국교 수립에 만족하고 물러났다.
 
[[994년]](성종 13년) 평장사(平章事)로서 청천강 이북의 [[여진족]]을 축출하고, 압록강 동쪽 280여 리, 곧 흥화진(의주), 용주(용천), 통주(선천), 철주(철산), 귀주(귀성), 곽주(곽산)을 포함하는 [[강동육주]]를 얻게 되었다.
 
== 서희의[[서희]]의 출전 ==
[[993년]]([[고려 성종]] 12년) 거란이 고려를 쳐들어왔다.
 
처음 [[소손녕]]은 "80만 대군이 왔다.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죽일것이다"라고 하며 고려의 항복을 종용하였다. 이와 함께 소손녕은[[소손녕]]은 압록강을 건너 봉산군에서 고려군과 첫 교전을 치러 고려군 선봉장을 붙잡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 소식이 함께 전해지자, 고려 조정은 큰 충격에 빠져 할지론으로 전쟁을 막자는 주장이 크게 일었고, [[고려 성종]]도 서경의 쌀을 버리도록 칙명을 내렸다.
이 소식이 함께 전해지자, 고려 조정은 큰 충격에 빠져 할지론으로 전쟁을 막자는 주장이 크게 일었고, [[고려 성종]]도 서경의 쌀을 버리도록 칙명을 내렸다.
 
그러자 서희는[[서희]]는 "전쟁의 승패는 군사의 강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틈을 잘 엿보아 움직이는데 있을 뿐입니다. 먹을 것이 넉넉하면 성도 지킬 수 있고 싸움도 이길{{풀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갑자기 쌀을 버리려 하십니까?" "이번에 서경이북의 땅을 내주더라도 삼각산 이북은 모두 고구려의 옛 강토인데, 앞으로 저들이 한없는 욕심으로 끝없이 강요한다면 다 내주시겠습니까?"라며 쌀을 버리라는 것과 할지론을 모두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들은 실은 우리에게 공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의 숫자만 보고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라며 거란의 80만 대군은 한낱 부풀려진 허풍뿐일뿐이라고 주장했다.
"저들은 실은 우리에게 공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적의 숫자만 보고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라며 거란의 80만 대군은 한낱 부풀려진 허풍뿐일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드디어 성종도 한번 싸워본 뒤에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다하며 거란군에 맞서 봉산군으로 서희를[[서희]]를 출전시켰다.
 
== [[서희]]-[[소손녕]] 담판 ==
 
문관출신이며 병관어사(兵官御事), 즉 현재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지위를 지낸 서희는[[서희]]는 거란군 총사령관 [[소손녕]]과 직접 담판을 하기 위하여 거란군 주둔지 봉산군으로 갔다.
 
서희가[[서희]]가 [[소손녕]]이 머무는 장막으로 가자, 거란군은 "먼저 대국의 귀인에게 절을 올리는 예를 갖추어라!"라며 위협적으로 서희를[[서희]]를 압박하였다. "뭘 꾸물거리고 있는가? 어서 절을 올려라!"라고 하자, 서희는[[서희]]는 크게 노하면서 "무슨 말인가? 신하가 임금을 대할 때 뜰에서 절하는 것은 예법에 있는 일이나, 양국의 대신이 대면하는 좌석에서 절을 하는 예는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숙소로 돌아가 움직이지 않았다.
 
[[소손녕]]이 내심 서희의[[서희]]의 인품을 비범하게 여기며, 결국 뜰에서 서로 마주 절을 한 뒤에 동서로 마주 앉았다. 결국 [[소손녕]]이 서희를[[서희]]를 압박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비상식적인 예를 고집했으나 오히려 서희가[[서희]]가 기선을 먼저 제압하게 되었다. 홀로 거란군 진영 내에서 담판을 하는 결코 대등하지 않은 불리한 상황이지만, 만약 서희가[[서희]]가 먼저 기세에 눌려 굽히고 들어갔다면 협상 내내 소손녕에게[[소손녕]]에게 끌려다녔을 것이다.
 
서서히 협상이 진행되자 소손녕은[[소손녕]]은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 거란의 것이다"라고 하며 침략명분을 밝히자, [[서희]]는 "그렇지 않소. 우리 고려는 바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요. 그래서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부르고 서경을 국도로 정한 것이오."라고 하며 오히려 "땅의 경계를 가지고 말하자면 오히려 귀국의 동경이 우리 영토 안에 들어와야 하거늘 어찌 우리가 침범했다는 말을 하시오?"했다. 이는 전쟁의 침략 명분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역사적 연고권 논쟁이었다. 고구려의 역사적 연고권 논쟁인 명분 싸움에선 [[서희]]가 보기좋게 승리하였다.
서희는 "그렇지 않소. 우리 고려는 바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요. 그래서 나라이름을 고려라고 부르고 서경을 국도로 정한 것이오."라고 하며 오히려 "땅의 경계를 가지고 말하자면 오히려 귀국의 동경이 우리 영토 안에 들어와야 하거늘 어찌 우리가 침범했다는 말을 하시오?"했다. 이는 전쟁의 침략 명분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역사적 연고권 논쟁이었다. 고구려의 역사적 연고권 논쟁인 명분싸움에선 서희가 보기좋게 승리하였다.
 
그러자 소손녕은[[소손녕]]은 다음으로 "고려는 거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바다건너 송나라와만 교류하고 있는가?"라고 본색을 드러냈다. 즉, 거란은 거란과 송과의 전면전이 발생시 배후에 있는 고려의 침입이 두려워 먼저 고려가 송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실질적인 거란의 침략목적이었다. 소손녕의[[소손녕]]의 말을 통해 이와 같은 거란의 속마음을 간파한 서희는[[서희]]는 "고려와 거란 양국의 국교가 통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이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여진이란 핑계거리를 만들어낸다음 "만일 우리가 여진을 쫓아내고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여 그곳에 성과 보를 쌓아 길을 통할 수만 있다면 어찌 귀국과 국교를 통하지 않겠소?"라 하며, 서희의[[서희]]의 애초 목적은 거란군의 철수였으나 오히려 이 담판기회를 통해 고구려의 옛땅 회복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결국 서희는[[서희]]는 거란과의 협상에 성공하며, 서경이북땅을 잃으며 항복하는 것이 아닌, 강동 6주의 땅을 거꾸로 얻어냄과 동시에 소손녕은[[소손녕]]은 서희에게[[서희]]에게 낙타 10두, 말 100필, 양 1000마리와 비단 500필을 선물로 주고 떠났다.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