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포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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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ffenSS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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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1=[[조선]]
|교전국2=[[일본]]
|지휘관1=[[이순신]]<br/>[[원균]]<br/>[[권준]]
|지휘관2=[[가메이 고레노리]]<br> [[구루시마 미치유키]]†
|병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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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투는 사천 해전에 이어 두 번째로 [[거북선]]을 앞세운 전투다. 특히 기함을 집중 공격하였는데, 중위장 [[권준 (1541년)|권준]](權俊)이 [[가메이 고레노리]]으로 추정되는 왜장을 화살로 명중시켜 바다로 떨어뜨리자, 첨사(僉使) [[김완 (1577년)|김완]](金完)과 군관 [[진무성]](陳武晟)이 목을 베었고, 왜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하기 바빴다. 하지만, 일본의 기록에서는 왜장 [[가메이 고레노리]]는 생환해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전장에서 [[권준]]이 화살울 쏴 [[구루시마 미치유키]]을 명중시켜 전사했으며전사시켜쓰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구루시마 미치유키]]에게 준 금부채가 전리품으로 노획되었다.
 
왜선 21척은 모두 격침되었고, 사살된 왜군만도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