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모 소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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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모 소린''' / '''오토모 요시시게''' ({{ja-y|大友宗麟/大友義鎮|おおともそうりん / おおともよししげ}}, [[1530년]] [[1월 31일]] ~ [[1587년]] [[6월 11일]])는 [[센고쿠 시대]]의 무장, [[분고노쿠니|분고]]의 센고쿠 [[다이묘]], 크리스천(キリシタン) 다이묘이다. [[오토모 가문]](大友氏) 제 21대 당주이다. 본명 '''요시시게'''보다 '''소린'''이라는 법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약력 ==
오토모 가문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난보쿠초 시대]]에 걸쳐 [[쇼니 가문]](少弐氏)과 [[시마즈 가문]](島津氏)과 더불어 [[막부]]의 [[고케닌]](御家人)으로서 권세를 누려,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서는 [[오우치 가문]](大内氏)의 규슈 진출에 대항하여 쇼니 가문과 연합하여 대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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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는 [[선종]]에 귀의했으나, 후에 [[크리스트 교]]에 큰 관심을 가져, 결국 스스로 세례를 받은 크리스천 다이묘로서도 유명하다. 한때 규슈 6개국을 평정한 규슈 최강의 다이묘이기도 했다. 그러나 「크리스천 왕국(キリシタン王国)」건설의 꿈을 목전에 두고 [[시마즈 요시히사]](島津義久)의 영지 [[휴가노쿠니|휴가]](日向)를 침공하였으나 대패하여([[미미가와 전투]](耳川の戦い)), 만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수하의 일개 다이묘로서의 처지를 감수하며 [[분고노쿠니|분고]] 1국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까지 쇠퇴하였다.
 
== 인물・일화 ==
=== 인물 ===
* 꽤나 호색가였던 듯, 일부러 [[교토]]까지 가서 미녀를 찾으러 다니며 점찍으면 분별 없는 약탈혼 수준의 행동을 몇번이나 반복하였다고 한다. 가신의 아내를 빼앗기도 하였으며, 크리스트 교를 둘러싸고 아내와 이혼하기도 하였다.
* 다른 사람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전해지고 있고 주색을 탐하는 등 횡포를 부리는 군주라는 기록도 남아 있어서, 그것이 가신과 일족의 반란을 일으키게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정무를 게을리하고 유흥에 빠진 소린을 [[다치바나 도세쓰]](立花道雪)가 훈계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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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시바카타쓰키(楢柴肩衝), 하쓰하나카타쓰키(初花肩衝)와 더불어 ‘천하 삼대 카타쓰키(肩衝, 다구의 일종)’로 불리는 닛타카타쓰키(新田肩衝)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의 문화인이기도 했다.
 
=== 크리스트교와 신앙, 난반문화 ===
* 크리스천 다이묘로서도 잘 알려져 있는 소린은 [[덴분]] 20년([[1551년]])에 포교하기 위해 분고를 방문한 [[예수회]]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ier)를 접견하였을 때 크리스트교를 처음 접했다. 27년 후인 덴쇼 6년([[1578년]]) 7월에 [[세례]]를 받고, [[포르투갈 왕국]]에 친서를 지닌 가신을 파견하였다. 영내에서의 포교활동을 보호하고, 남만무역을 행한다. 또한 하카타 상인 [[시마이 소시쓰]](島井宗室)와 [[가미야 소탄]](神谷宗湛)등과 교우하여, [[명나라]]・[[조선]]과의 무역도 행한다. 그러나 실제로 명・조선과의 무역으로 이익을 본 것은 [[15세기]] 후반까지로, [[삼포 왜란]]을 계기로 적어도 명・조선과의 무역관계는 쇠퇴하게 되어 명의상 오토모 가문의 간판을 이용하고 있던 [[쓰시마]]의 고쿠진과 하카타의 호상들이 실리를 챙기게 된다. 또한 수입품은 식재료와 무기 등 경제・군사적으로 영향을 미칠 만한 물건은 적었고, 대부분은 소위 사치품이어서 그다지 실질적인 이익은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 도야마 미키오(外山幹夫)의 저작 등에서 지적되고 있다. 오히여 소린 시대에는 유력 가신에게 은상으로 내릴 영토가 부족하여, 사찰과 신사의 토지를 몰수하거나 영지 대신에 살구잎 문양(오토모 가문의 문장)의 사용권을 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등 경제 상황이 결코 좋지 않았다.
* 덴쇼 10년([[1582년]])에 규슈의 크리스천 다이묘들이 로마에 파견한 [[덴쇼 소년사절단]]에는 이토 만쇼(伊東マンショ)를 대리로 삼아 파견하였다(단, 이 건에 대해서 소린 본인은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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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신앙이 깊은 만큼, 크리스트교의 「살인하지 말라」<ref>십계명의 다섯번째 계명</ref>라는 가르침과 전장에서 살생을 피할 수 없는 센고쿠 시대의 현실의 사이에서 번민했다고 전해진다.
 
== 주석 ==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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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1530|1587}}
 
[[분류:센고쿠 다이묘]]
[[분류:오토모 가문]]
 
[[en:Ōtomo Sōr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