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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오스트리아적이고 반동정책으로 민중의 원망을 사던 알렉산다르 왕과는 달리 페타르는 진보적인 정치가와 민족주의자들을 등용하여 민족주의를 일으켰고, 의회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그는 세르비아를 자급자족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였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우방으로 삼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자신의 적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왕국|이탈리아]]가 세르비아와 동맹을 맺었다는 이유로 세르비아를 비난했다. 그러나, 페타르는 프랑스 군의 장교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강국에 대해서도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민족주의자 중 한 명인 [[니콜라 파시치]]를 등용하여 [[대세르비아주의]]의 제창을 도왔다. 니콜라 파시치는 '[[세르비아인]]이 생활하는 모든 지역을 통일하여 카라조르제비치 가문의 통치 아래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상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으로 국명이 바뀌었을 때 실현되었으며,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인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정권도 그것을 계승했다.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1992년]]에 와해되었지만 대세르비아주의는 세르비아인에게는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페타르가 즉위한 이후, 세르비아는 경제력이 성장하였고 군사력도 증강되었다. [[세르비아 육군|육군]]이나 [[1912년]]에 창설된 [[세르비아 왕국 항공대|항공대]](Srpska Avijatika. [[1923년]]에 정식으로 [[유고슬라비아 왕국 공군|공군]]이 창설된다)나 프랑스제 무기를 사용하였다. 성격이 당당했던 그는 경제학과 정치학을 배웠으며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보불전쟁]]에서는 육군 중위로 복무하였다. 사병을 잘 지휘하였다는 사실이 프랑스군 당국에도 알려져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세르비아]]가 비록 적대적인 오브레노비치 가문이 통치하고 있다지만 애국심이 남달랐던 그는 세르비아의 독립을 지원했다. 그는 그 공로로 [[몬테네그로 왕국|몬테네그로]]의 상원의원도 지낸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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