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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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Haitai Tigers)는 [[1982년]]부터 [[2001년]]까지 있었던 [[한국 프로 야구]]팀이다.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였으며, [[1982년]] 창단 당시부터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기 이전인 [[1989년]]까지는 [[전라북도]]의 연고권도 갖고 있어서, [[전라북도]] [[전주시]]에서도 홈경기를홈 경기를 분산 개최했다. 프로 야구 출범과 함께 [[1982년]] [[1월 30일]]에 창단되었고, 그 해 4위를 차지했다. 모기업인 해태의 경영난으로 [[2001년]] [[기아자동차|기아]]가 [[해태제과식품|해태]]를 인수함에 따라 구단주가 바뀌어 [[KIA 타이거즈]]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년 동안 무려 9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차지하여 우승 확률이 50%에 가까웠던 것이다가까웠다. 이는 [[뉴욕 양키스]](약 26%)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약 30%)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
 
더구나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한국 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해태는 9차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해서 9번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차지하여, [[한국 시리즈]] 진출만 놓고 따지면 우승 확률이 100%이다.
 
더구나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한국 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해태는 9차례 [[한국 시리즈]]에 진출해서 9번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시리즈]] 진출만 놓고 따지면 우승 확률이 100%이다.
== 역사 ==
===창단과 [[1982년]] 시즌===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 [[1월 30일]] [[해태제과]] 본사에서 14명이라는 6개 구단 중에서도 가장 적은 초미니 선수단으로 [[OB 베어스]]와 [[MBC 청룡]]에 이어 세 번째로 창단되었다. 개막 후 초대 [[김동엽]] 감독이 1개월 만에 해고되고 [[조창수]] 코치가 뒤를 이었다. 전기 및 후기 리그 우승을 모두 놓치고 38승 42패, 4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김성한 (야구 선수)|김성한]]은 투타를 겸업하여 전무후무한 10승 - 타점왕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1983년 ~ 1985년 : 김응룡 감독의 첫 세 시즌===
[[미국]] 야구 유학을 마친 [[김응룡]] 감독을 영입한 해태는 [[1983년]] [[6월 24일]] [[구덕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전기리그전기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주포 [[김봉연]]의 교통 사고로 인해 후기 리그 우승을 [[MBC 청룡]]에 넘겨 주고, 55승 44패 1무, 최종 최종순위순위 2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한다.
 
[[1983년]], [[MBC 청룡]]과의 [[한국 시리즈]]에서 마운드의 에이스 [[이상윤 (야구 선수)|이상윤]]과 [[김용남]], 그리고 최초의 언더핸드 [[주동식]]과 타선에서는 [[김봉연]], [[김성한 (야구 선수)|김성한]], [[김종모]] 등 'KKK포'의 활약속에활약 속에 해태는 4승 1무로 첫 우승 트로피를 안게 된다. 그러나, 1984년과[[1984년]]과 1985년에는[[1985년]]에는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1984년]] 해태는 전기 리그 4위, 후기 리그 3위로 43승 54패 3무, 최종순의최종 순위 5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5월 5일]] [[광주 무등 경기장 야구장|광주구장]]에서 벌어진 [[삼미 슈퍼스타즈]]와의 경기에서 [[방수원]]이 한국 프로야구 첫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1985년에도 해태는 전기 리그 3위, 후기 리그 3위로 59승 52패 1무, 최종순위최종 순위 3위로 정규 시즌을 마감하였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인 [[이순철]]과 [[선동열]], 그리고 홈런왕과 최다안타, MVP를 차지한 [[김성한 (야구 선수)|김성한]]의 활약으로 [[1986년]] ~ [[1989년]] [[한국 시리즈]] 4연패의 기틀을 쌓게 된다.
 
===1986년 ~ 1997년 : 해태 왕조 - 선동열과 이종범===
[[1986년]] 해태 타이거즈는 평균자책점[[평균 자책점]] 2.86을 기록한 철벽 마운드와 [[김봉연]], [[김종모]], [[김성한 (야구 선수)|김성한]], [[한대화]], [[이순철]] 등의 맹활약으로 전·후기 후기리그리그 2위를 기록하여 한국시리즈에[[한국 시리즈]]에 직행하였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 시리즈에서 [[김정수 (1962년)|김정수]]의 맹활약으로 4승 1패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는 198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를 한 번, [[빙그레 이글스]]를 두 번 누르고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각각 [[김정수 (1962년)|김정수]], [[김준환]], [[문희수]], [[박철우 (야구 선수)|박철우]]가 한국 시리즈 MVP를 차지하였다.
 
[[1989년]] [[전라북도]]를 연고지로 하는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그동안 유지해 온 전북지역전북 지역 연고권을 신생 구단인 쌍방울에 양도하게 된다. 또한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 및 신인 1차 지명 연고 지역도 호남 전 지역에서 [[광주광역시|광주직할시]]와 [[전라남도]]로 축소되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전주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홈 경기를 분산 개최해 왔는데, 전주 야구장에서 거둔 통산 성적은 40승 1무 24패, 승률 0.623로 높았다. 특히 [[1987년]]에는 [[전국체육대회]]의 [[광주광역시|광주]] 개최로 인해 플레이오프를 전주 야구장으로 옮겨서 치렀는데, 해태 타이거즈는 [[OB 베어스]]를 전주에서 물리치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있다.
 
[[1990년]] 해태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패퇴하며 한국 시리즈 5연패에 실패하나, [[1991년]] 빙그레 이글스를 누르고 여섯 번째 우승에 성공하게 된다. 이 해 골든 글러브 수상자 10명 중 무려 6명([[선동열]], [[장채근]], [[김성한 (야구 선수)|김성한]], [[한대화]], [[이호성 (야구 선수)|이호성]], [[이순철]])의 골든 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팀 최다 수상 신기록을 갱신하였다.
 
[[1992년]] 선동열의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패배하였으나, [[1993년]] 괴물 신인 유격수 [[이종범]]의 등장과 다승왕 [[조계현 (야구 선수)|조계현]]을 비롯해 [[선동열]], [[이대진]], [[송유석]], [[이강철 (야구 선수)|이강철]] 등의 맹활약으로 81승 42패 3무의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며 한국 시리즈에서 진출하여 우승하였다.
 
[[1994년]] 이종범이 0.393(역대 2위)의 타율을 기록하였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에게 패배,패배하여 4위에 머물게 된다. [[1995년]]에는 이종범과 이대진의 방위 복무로 인한 전력 공백으로 4위로 시즌을 마치고, KBO 규정에 따라 준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하여 시즌을 마친다.
 
[[1996년]] 선동열의 [[주니치 드래곤스]] 이적의 공백을 [[임창용]]과 [[강태원]]이 메우며,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 시리즈에서 4승 2패로 여덟 번째 우승을 확정지었다. [[1997년]]에도 [[이종범]], [[이대진]] 등의 맹활약으로 아홉 번째 우승을 거머쥐어, 15년간 우승 9번이라는 전무한 기록을 세웠다.
 
===1998년 ~ 2001년 : 왕조의 쇠락 ===
[[이종범]]이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한 후 맞은 [[1998년]] 시즌에 해태는 시즌 5위로 [[장성호 (야구 선수)|장성호]] (.312)를 발견한 데에 위안을 삼았다. [[대한민국]]이 IMF 관리 체제 하에 들어가 모기업 [[해태제과]]의 자금난이 심해진 것은 2001년까지[[2001년]]까지 해태 타이거즈의 악재가 되었다. [[1999년]] [[임창용]]과 트레이드된 [[양준혁]]과 [[홍현우]], [[트레이시 샌더스]]의 맹활약으로 팀 최다 홈런 기록 (210개)을 경신하였으나, 마운드의 부진으로 통합 7위에 머물게 된다. [[2000년]] 시즌에도 역시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6위에 머물렀고, 우승 9회를 이룬 [[김응용]] 감독마저 [[삼성 라이온즈]]로 떠나 [[김성한 (야구 선수)|김성한]] 감독이 그 뒤를 잇게 된다. 2001년 시즌 중반인 7월, 결국 해태 타이거즈는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어 이름을 [[KIA 타이거즈]]로 바꾸게 된다.
 
== 역대 성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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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외국인선수외국인 선수 ==
2000
*{{국기그림|도미니카공화국}} [[헤수스 타바레스]] 74경기 .334 3홈런 44타점 31도루 21볼넷 32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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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 진기록 ==
*[[방수원]]의 프로 야구 최초 노히트 노런(1984.5.5, 삼미전)
*[[선동열]]의 최초 및 최다 0점대 평균자책점평균 자책점(1986, 1987, 1993)
*[[김성한 (야구 선수)|김성한]]의 프로야구 최초 10(10승)-10(13홈런) 클럽 가입, 프로야구 최초 30홈런 달성(1988), 프로 야구 최초 20(26홈런)-20(32도루) 클럽 가입(1989)
*[[이종범]]의 단일 경기 최다 도루(6, 1993), 단일 시즌 최다 안타 (196, 1994), 국내 출신 선수 최고 타율 (0.393, 1994), 단일 시즌 최다 도루 (84, 1994), 30(30홈런)-60(64도루) 클럽 가입(1997)
*[[이대진]]의 10타자 연속 삼진(1998.5.12 현대전)
*[[홍현우]]의 2루수 최초 30(34홈런)-30(31도루) 클럽 가입(1999)
*통산 9회 우승과 4년 연속 우승(198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