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성군 (156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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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 선조|선조]]가 의주로 파천하자 아버지 하원군과 함께 걸어서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호종(扈從)하였으며, [[1596년]] 정의대부(正義大夫)로 가자(加資)되고, 익성군(益城君)에 봉해졌다.
 
이무렵 그가 왕족의 위세를 빌려 백성의 서적(書籍)을 침탈했다는 대간의 탄핵이 지속되었으나 왕이 두둔하여 돌보아줌으로써 무사하였고, 오히려 왕이 수십권의 서책을 하사하고 승헌대부(承憲大夫)에 가자하였고, [[1605년]](선조 38) 호성원종2등공신(扈聖原從二等功臣)에 책록되었고, [[1610년]] 종1품인 가덕대부(嘉德大夫)가 되었다.
 
[[1612년]] 대북파가 소북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김직재]](金直哉) 등이, [[순화군]](順和君) [[이보]](李王+土)에게 입양한 그의 아들 [[진릉군]](晉陵君) [[이태경]](李泰慶)을 받들어 반역을 꾀하려 했다는, 이른바 김직재의 무옥 사건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어 [[1614년]](광해 6) [[7월 1일]] 배소(配所)에서 향년 49세로 별세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신원되었다.